선풍기 바람을 정면으로 맞으며 잠이 들어서인지


피곤이 채 가시지도 않은 시간에 눈이 떠졌다.


난 선풍기바람이나 에어콘 바람을 맞으면 잠을 잘 자지 못해서


보통 끄거나 피하거나 하는 편인데 간밤에 비가 와서 습한 느낌에


계속 바람을 쐬다가 잠이 들어버린 것이다.


이건 나만 그런게 아니라 다들 그러겠지.


나만 예민한 척 하는게 아닐거야.



비틀비틀 균형이 잡히지 않는 발에 의지하며 방문을 나섰는데,


익숙한 풍경이 보이지 않는다.


거실에서 주무셨을 아빠가 보이지 않는다.


비틀거리던 두 다리에 힘이 꽉 들어가고


동공이 두배는 커진 듯 눈이 동그랗게 떠졌다.


잰걸음으로 안방 문을 벌컥 열어본다.


없다.


아빠도 없고, 엄마도 없다.



이미 방에서 나올 때부터 챙겨들고 있던 담배와 핸드폰.


핸드폰으로 엄마를 찾아 바쁘게 터치패널을 두드리며 현관문을 열었다.


신호가 가는 동안에 담뱃불을 붙이고 깊게 마시고 후 내쉬어 본다.


수화기 너머로 주변 사람들의 소음 소리와 함께 엄마의 들뜬 목소리가 들려왔다.


두분이 함께 어디라도 가시는 줄 알았더니,


엄마는 등산, 아빠는 출근.


비오는 날에도 등산은 꼬박꼬박 열심히도 다니시는구나.



현아가 한 TV쇼에 나와서 이런 얘기를 한 적이 있다.


자신은 또래보다 이른 나이에 많은 성공도 거두었고 돈도 많이 벌었는데,


어느날 갑자기 집에 가면 엄마 아빠가 안계실 것만 같은 생각이 든다며


닭똥같은 눈물을 뚝뚝 떨구는 것이었다.


갑자기 그 이야기가 나에게 오버랩 된 것인지


잠에서 깬지 3분만에 지옥과 천당을 오가며 혼자 쇼를 했다.



나이 먹으면 겁이 많아진다더니.


나도 현아가 골반 한 번 튕겨주면 환장하는 삼촌이 되어버린걸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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