익히 알고 있는 글자도 덜렁 그 낱말만 써놓고선 우두커니 바라보면
'어? 저 글자를 저렇게 쓰는게 맞나?' 하는 생각이 들 때가 있다.
읽어보고 뜻을 생각해보면 내가 알던 그 낱말이 맞는데,
모양만 뚫어져라 보고 있으면 전혀 다른 것을 보는 듯한 착각마저 든다.
서울.
이 글자가 나에겐 그렇다.
대한민국의 수도이자, 모든 방송국과 주요 회사들의 본사가 위치해 있고,
가장 많은 문화생활을 즐길 수 있으며, 국민의 4분의 1이 모여 살고 있는 그 동네.
한국에서 가장 야경이 화려한 도시이고,
아름다운 강이 흐르는 전세계에 몇 안되는 수도이다.
하지만 서울이라는 도시를 떠나 그 글씨를 바라보노라면
글씨에서 풍겨나오는 서글픔이 느껴진다.
서울.
사람이 기댈곳조차 찾지 못하고 울고 있는 듯한 느낌.(나에겐 그렇게 느껴진다.)
10년동안 정들었던 서울에서 구미로 내려와 이제 겨우 11개월.
나는 그렇게도 나에게 모질었던 서울로 다시 가야할 것만 같다는 생각을 했다.
전세계에서 어메리칸 드림을 좇아 미국으로 향했던 것처럼
지방에 사는 사람들에게 서울은 성공의 땅처럼 느껴진다.
부푼 꿈을 안고 처음으로 건너던 한강철교에서
한강을 바라보며 느꼈던 그 감정을 그대로 지니고 살 수 있는 사람은 얼마나 될까.
내가 보고 싶은 공연을 하는 곳도 서울.
내가 만나고 싶은 사람이 있는 곳도 서울.
쉬고자 떠난 여행에서 만난 사람도 서울.
내가 하고픈 일을 할 수 있는 곳도 서울.
서울에서 세시간이 떨어진 이곳에서는 만나기 힘든 그들은
내가 지방에 있어서 불편하다고 느낄 뿐,
그들이 서울에 있어서 불편하다는 생각은 그다지 하지 않는다.
나 역시도 서울시민일 때는 그랬으니까.
그래.
내가 결국에는 서울에서 살아야 할 운명이라면,
그럼 내가 지금 느끼는 '서울'이라는 글씨에서 다른 느낌을 가져보자.
좁은 땅 덩어리에 밀집된 인구에 숨막혀 할 것이 아니라
차라리 그들 모두를 사귀어버리자.
울고 있는 사람의 손을 잡아주는 느낌?
이것이 내가 앞으로 '서울'이라는 글자를 통해 느껴야 할 바로 그 느낌인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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