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텝맘> 연기파 배우들이 전하는 Motherhood

미드 '빅뱅이론'을 보면서 '쉘던'과 '레너드'의 어머니들을 보면서 Parenthood에 관한 글을 쓴 적이 있습니다. 아이가 생긴 후로는 부모에 관한 영화, 아이에 관한 영화를 보면 예전과는 전혀 다른 감상을 갖게 됩니다. 같은 작품이라도 보는 사람에 의해서 다르게 해석되는 것, 이것이 글이든 영화이든 매체가 가진 힘이겠지요.

영화 '스텝맘'은 재혼하려는 아버지와 그의 새 아내, 그리고 전처와 아이들이 가족이 되어가는 스토리를 그립니다. 아이들에게 있어 부모의 의미와 부모에게 있어서 아이는 어떤 의미인지 다시금 생각하게 하는 좋은 영화였습니다.

이 리뷰는 영화 '스텝맘'에 대한 스포일러를 포함하고 있습니다. 원치 않으시는 분은 영화를 먼저 보고 오시기 바랍니다.

영화 '스텝맘'(1999) 정보 바로 가기

영화 스텝맘(1999)의 포스터. 사진: 다음영화

계모와 딸

'스텝맘'이라는 제목을 우리말로 바꾸면 '계모'입니다. 계모는 '재혼으로 생긴 새엄마'라는 뜻을 가지고 있지만 우리는 종종 나쁜 엄마라는 인상으로 이 단어를 대하게 됩니다. 어렸을 때 읽은 많은 동화들에서 계모가 등장하기 때문일지도 모르겠습니다. 특히 동화 '신데렐라'때문에 계모와 딸은 관계는 엄청난 악연인 것처럼 느껴집니다.

프로페셔널 사진작가 '이사벨'은 엄마라는 존재에 어울리는 사람은 아닌 것처럼 보였습니다. 하지만 이제 남편이 될 '루크'를 사랑하기 때문에 사랑하는 사람이 목숨처럼 아끼는 그의 딸과 아들도 받아들이려고 합니다. 하지만 그렇게 만만한 일은 아니겠죠.

루크와 이사벨. 사진: 다음영화

이사벨도 쉽지 않았겠지만 특히 사춘기를 겪는 딸 '안나'에게는 더 힘들었을 겁니다. 부모님이 이혼하신 것만으로도 큰 충격일 텐데 언니처럼 보이는 여자가 새엄마가 된다니. 사춘기 여자 아이의 예민한 감성으로는 도저히 받아들이기 힘든 일이었겠죠.

이사벨은 자신을 인정하지 않는 안나와 계속 다투게 됩니다. 계모의 딸 사이에서 흔히 벌어지는 일일 수 있습니다. 하지만 무엇이든 잘 해내는 프로페셔널한 그녀는 이마저도 잘 해내고 싶어 합니다. 하지만 Parenthood라는 것은 일을 대하듯이 열심히 한다고 가질 수 있는 것이 아닌 모양입니다. 이사벨은 다가가고 싶어 하지만 안나는 점점 더 멀어져 가죠.

계모가 가진 큰 핸디캡은 이 영화가 정확하게 다루고 있든 추억을 공유하지 못한다는 점입니다. 아이가 첫 뒤집기를 할 때도, 첫걸음마를 할 때도 이사벨은 옆에 있지 않았지요. 흔히 아이들은 학교 가기 전까지 부모에게 가장 큰 기쁨을 주고 이후로는 가장 큰 고통을 안겨준다고 농담처럼 이야기하곤 하는데 이런 기쁨도 고통도 느껴보지 못한 이사벨이 하루아침에 완벽한 엄마 역할을 하는 것은 어불성설입니다. 그리고 영화는 이 점을 꿰뚫어 보고 있습니다.

 

추억과 미래에 대한 영화

과거를 가진 재키와 그것을 지켜주고 싶은 이사벨

안나의 친엄마 '재키'는 두 아이를 훌륭하게 키워낸 전형적인 어머니입니다. 아이들을 24시간 케어하고 오직 아이들만을 위해 사는 것 같습니다. 하지만 재키에게는 허락된 시간이 얼마 남지 않았습니다.

힘든 투병 생활을 이어갔지만 결국 병에 차도가 없게 되자 이제는 죽을 날만 기다릴 수밖에 없게 되었을 때 재키의 심정은 어땠을지 상상을 해봤습니다. 감히 그 심정을 헤아릴 수 있을 거라고 생각하지 않지만 커다란 슬픔과 절망이 자리하고 있음은 쉽게 짐작이 가능합니다. 아직 한참 더 엄마의 보살핌이 필요한 아이들을 두고 가야 한다니요.

재키는 아이들에게 헌신하며 일생을 보냈습니다. 아이들의 일과 시간표가 곧 재키의 일과였죠. 아이들에게 좋은 것만 주고 좋은 것을 가르치고 싶어 하는 여느 부모처럼 재키는 아이들을 보호하며 키웠습니다. 그런 재키에게 아이들을 남겨두고 먼저 세상을 떠나라는 것은 청천벽력 같은 일이었을 것입니다.

아름다운 시간을 보내는 재키와 안나, 벤. 사진: 다음영화

재키의 딸 안나와 아들 벤은 너무도 아름다운 추억을 쌓으며 살아왔습니다. 안나와 벤은 엄마와 행복했던 순간만을 기억합니다. 영화는 이들이 쌓아온 추억을 너무도 아름답게 보여 줍니다. 이 시점에서 이들에게 필요한 것은 함께할 시간과 떠올릴 수 있는 행복한 기억입니다.

이사벨이 프로페셔널 사진작가라는 설정은 다분히 의도된 것으로 보입니다. 이사벨은 단번에 그들 사이를 비집고 들어가는 대신 재키의 존재를 인정하고 한 발자국 뒤로 물러납니다. 그리고 그들의 추억을 아름답게 사진으로 남겨 줍니다. 아이들의 과거를 함께 할 순 없었지만 아이들에게 다른 선물은 할 수 있었습니다. 바로 재키와 함께하는 시간들의 기록이지요. 이사벨은 아이들에게 그 시간들을 아름답게 간직하게 해주고 싶었을 거라 생각합니다.

이사벨 덕분에 아이들은 재키와의 시간을 선명하게 기억하게 되겠죠. 사진: 다음영화

일련의 사건들을 거치면서 재키는 아이들의 미래를 함께 할 새엄마 이사벨을 받아들입니다. 아이들과 함께 한 과거를 가진 재키와 아이들의 미래를 함께 할 이사벨, 추억과 미래를 나눠가지는 친엄마와 새엄마가 이 영화의 주인공이자 주제입니다.

 

아이들의 미래를 함께할 이사벨

잘 나가는 사진작가 이사벨은 진짜로 잘 나갔습니다. 남들이 볼 수 없는 것을 이사벨은 볼 수 있었고 그렇기 때문에 에이전시에서 함부로 할 수 없는 인물이었죠. 프로페셔널한 직업을 가진 여자와 Parenthood는 종종 양립할 수 없는 것처럼 묘사됩니다. 아이들과 마찬가지로 일(Work)도 헌신할만한 사람을 필요로 하기 때문입니다.

이사벨은 아이들과 친해지기 위해 자신만의 방법으로 노력합니다. 재키를 대신하는 사람이 아니라 또 다른 엄마로서 아이들에게 다가간 것이죠. 이사벨이 재키에게 이야기한 것처럼 아이들의 과거를 함께하지 못한 그 간극은 채울 수 있는 방법이 없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이사벨이 아이들의 엄마가 되기 위해서는 이사벨만의 방법이 필요했습니다.

자유분방한 여성 이사벨. 근데 미국사람들은 다 저렇게 어딘가 걸터앉는 걸 좋아하는 것 같아요. 사진:다음영화

이사벨은 자기 방식으로 아이들을 대합니다. 남자 친구 때문에 상처 받은 안나에게 자유분방하고 자기주장 확실한 자신의 모습처럼 행동하라고 조언을 해주죠. 그리고 이 사건을 계기로 둘은 가까워지게 됩니다. 아이들의 엄마가 되기 위해서 다른 엄마를 흉내 낼 필요는 없습니다. 앞서 말한 것처럼 그건 가능하지도 않을 뿐만 아니라 흉내 내고자 하는 자신도, 그것을 겪는 아이들도 힘들 것임에 분명합니다. 어떤 부모를 가지게 되는지는 순전히 태어날 아이의 운이라고 했습니다. 어떤 아이의 부모는 둘 다 일을 해야 해서 혼자 보내야 하는 시간이 많을 수도 있고 다른 아이는 운 좋게도 둘 중 한 명이 집에 있어서 부모와 보내는 시간이 더 많을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그런 것들이 아이들의 미래를 결정하지는 않지요. 아이를 키우는 방식 또한 마찬가지라고 저는 생각합니다. 재키처럼 아이들을 보호할 수도 있지만 이사벨처럼 적극적으로 맞서라고 할 수도 있지요.

안나에게 억지로 다가가기 보다는 자신만의 매력으로 다가가길 선택한 이사벨. 현명했죠. 사진: 다음영화

재키를 대신해 아이들을 품어야 할 이사벨은 아이들을 위해 기꺼이 자신의 직업을 내던집니다. 잠깐이지만 기른 정이 크게 작용했던 것일까요. 너무도 흔쾌히 직업을 내려놓은 걸 볼 수 있습니다. 이제 이사벨은 아이들의 미래를 담는 역할을 하게 됩니다. 지금까지 이사벨이 과거를 담는 직업을 가졌었다면 앞으로는 아이들의 미래를 모성으로 담는 역할을 하게 되는 것이죠. 사진작가라는 직업과의 이별은 과거를 의미하는 재키의 죽음과 앞으로 아이들과 미래를 만들어 가야 할 이사벨의 운명을 간접적으로 보여주는 사건이라고 생각됩니다.

 

연기파 배우들이 제작하고 주연한 영화

이 영화는 두 연기파 배우 '수잔 서랜든'과 '줄리아 로버츠'가 직접 제작에 참여하고 또 주연을 한 영화입니다. 워낙 연기를 잘하는 두 배우가 나오기 때문에 연기면에서는 나무랄 것이 없는데요. 두 배우뿐 아니라 아역을 맡은 아이들 또한 너무 훌륭한 연기를 보여줘서 보는 내내 감탄하게 합니다. 특히 아들 벤 역의 '리암 에이켄'은 너무 잔망스러운 연기를 보여줘서 내내 웃음을 짓게 하네요.

 

죽어가는 전처 '재키'역의 수잔 서랜든

사진 한장인데도 많은 걸 이야기하는 듯한 연기파 배우. 사진: 다음영화

연기파 배우 수잔 서랜든이 시한부 인생을 사는 엄마 역으로 훌륭한 연기를 보여주었습니다. 한국인들에게는 배두나가 나온 영화 '클라우드 아틀라스''쉘 위 댄스'로 더욱 친근한 배우입니다.

 

새엄마 '이사벨'역의 줄리아 로버츠

프로페셔널한 역할이 잘 어울리는 프로페셔널 배우! 사진: 다음영화

말이 필요 없는 배우, 줄리아 로버츠입니다. 저는 정말 이 사람의 연기를 좋아합니다. 시원시원한 이목구비와 왠지 모르게 똑똑해 보이는 외모 때문인지 전문직이나 작가 같은 역할이 참 잘 어울리는 배우입니다.

 

아빠 '루크'역의 에드 해리스

중후하고 점잖은 매력이 있는 에드 해리스. 사진: 다음영화

이 아저씨도 참 유명한 아저씨죠. 설국열차에도 나왔었고요.

 

사춘기 소녀 '안나'역의 지나 말론

헝거게임에서는 이랬던 그녀인데 어릴 땐 귀요미였네요. 사진: 다음영화

얼굴이 굉장히 낯이 익다 싶은 배우입니다. 어디서 봤나 했더니 헝거게임: 캣칭 파이어였어요. 거기서는 연기가 그저 그랬던 것 같은데 이 영화에서는 꽤 좋은 연기를 펼칩니다.

 

순수한 아들 '벤'역의 리암 에이켄

큰 사진으로 볼 가치가 있는 벤. 사진: 다음영화

이 영화에서 처음 본 아역배우인데 너무 잔망스러운 연기 때문에 많이 웃었네요. 이 영화에서 웃음 담당 잔망 쟁이 벤입니다.

 

제 점수는요

왓챠에서 봤습니당.

4.5점 주었습니다. 다소 작위적인 소재에 초반에 있는 친모와 계모 간 신경전이나 안나와의 신경전 등은 감점 요소이지만 이사벨이 사진작가에서 엄마가 되어가는 과정이 너무 아름답고 보기 좋았던 영화입니다. 일본 영화 그렇게 아버지가 된다보다 이 영화가 더 부모가 되어가는 과정을 잘 그린 것 같습니다. 왓챠 추천영화 '스텝맘'이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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