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레저베이션 로드> 아픈 마음을 가진 아버지들의 이야기

대학 시절 교양 수업에서 '아픈 마음으로는 아픈 사랑밖에 할 수 없다'라는 말을 들었습니다. 온전치 않은 마음으로는 정상적인 사랑을 할 수 없다는 겁니다. 영화 '레저베이션 로드'에서는 아픈 마음을 가진 두 아버지의 이야기가 펼쳐집니다. 두 아버지와 그들이 끔찍이 사랑하는 두 아들의 이야기. 아픈 마음을 가진 두 아버지의 아들에 대한 사랑은 아프지 않을 수 있을까요?

이 리뷰는 영화 '레저베이션 로드'에 대한 스포일러를 담고 있습니다. 원치 않으시면 영화를 먼저 보고 와주시기 바랍니다.

영화 '레저베이션 로드'(2007) 정보 바로 가기

 

비뚤어진 부정, 예정된 파멸의 길

영화 레저베이션 로드(2007)의 한국 개봉 포스터. 사진: 다음영화

어느 날 갑자기 벌어진 사고로 인해 인생이 완전히 달라진다면 어떨까요. 영화 '레저베이션 로드'에는 사고로 인해 완전히 인생이 망가져 버린 두 아버지가 나옵니다. 사고로 인해 아들을 잃은 아버지, 아들을 잃을까 두려워 뺑소니를 친 아버지.

분노에 사로잡힌 아버지

에단은 죽은 아들에 집착합니다. 죽은 아들이 너무 가엽고 억울합니다. 그럴 수밖에 없습니다. 자신의 눈 앞에서 착하디 착한 어린 아들이 차에 치여 죽었습니다. 그것도 반딧불을 놓아주러 가는 길에요. 작은 미물을 살리기 위해 걸음 하던 조쉬는 불행하게도 차마에 의해 짧은 생을 마감했습니다. 저 같아도 억울해서 못 살 것 같습니다.

기억이 나지 않는 기자가 한 말입니다. 자식이 죽은 부모의 울음소리는 사람의 소리가 아니라고 합니다. 마치 짐승의 울음소리와도 같은 소리였다고 합니다. 그만큼 맨 정신이 아니라는 것이고 그만큼 속에서 터져 나오는 울분이 말로 다 못한다는 이야기일 겁니다.

그런 슬픔에 매몰된 에단은 헤어 나오지 못하고 범인을 찾는데에 몰두합니다. 눈 깜짝할 사이에 눈 앞에서 자식을 잃은 아버지 '에단'의 삶은 무너져 내리기 시작합니다. 가정적인 사람이었던 그는 더는 가정을 돌볼 여력이 없습니다. 가해자를 찾아 심판해야 하기 때문입니다. 아무도 범인을 찾지 않는다는 피해의식과(어느 정도 사실이지만) 마땅히 벌을 받아야 할 범인이 멀쩡히 돌아다니고 있다는 생각 때문에 에단은 잠을 설쳐 가면서 범인을 찾기 위해 고군분투합니다. 아들의 삶을 빼앗고 나의 삶을 망가뜨린 짐승을 찾으면 마음의 평화가 찾아올까요?

범인을 쫓다가 경찰에 체포되기까지 한 에단. 사진: 다음영화

어느새 에단의 부정은 변질되었습니다. 아들을 잃은 슬픔과 아들에 대한 그리움, 그것이 변하지는 않았을 겁니다. 하지만 그것보다 에단의 마음속에 더 크게 자리한 것은 가해자에 대한 분노입니다. 그 분노를 이기지 못한 에단은 가족도 내팽개치고 자신의 삶이 망가져 가는 것도 모른 채 오로지 범인을 찾기 위해 이리 뛰고 저리 뛰는 것입니다. 아들 조쉬를 위해서라도 분노를 조금은 참아 가면서 조쉬가 사랑했던 아버지의 모습으로 조쉬가 사랑하는 엄마와 여동생을 더 돌보아야 하는 것 아닌가 생각해 봅니다. (그러면서도 그 분노가 아니었으면 영영 드와이트를 찾아내지 못했을 거란 생각을 해보면 이 영화는 뭔가 잘못된 것 같습니다.)

두려움에 사로잡힌 아버지

일주일에 한 번 볼 수 있는 아들과 함께 야구장에 다녀오던 또 다른 아버지 '드와이트'는 잠깐 한눈 판 사이 그만 에단의 아들 '조쉬'를 치고 맙니다. 한 번만 문제를 더 일으키면 아들을 볼 수 있는 방문권이 빼앗길 수 있는 위기에 처한 드와이트는 멈추지 않고 그대로 달아나 버립니다. 행여나 잡힐까 불안해하며 밤잠을 설치는 건 드와이트도 마찬가지였습니다. 남의 눈에 피눈물 나게 하고 밤잠을 편히 잘 순 없겠죠. 술에 기대어서야 겨우 잠이 드는 드와이트는 에단이 그리 멀지 않은 곳에 있는 사람이라는 것을 알게 됩니다. 양심의 가책으로 몇 번이나 자수하려 하지만 용기를 내지 못한 드와이트는 점점 더 심하게 죄책감에 시달리게 됩니다.

죄책감에 시달리는 드와이트. 그래야 마땅하죠. 사진: 다음영화

드와이트의 삶도 서서히 망가져 갑니다. 직장에 툭하면 지각을 합니다. 술을 마시고 잔 까닭이겠죠. 일에 집중도 잘 안되고요. 이혼 과정에서 재정 상태도 썩 좋지 않은 것 같아 보입니다. 무엇보다 최악인 것은 아들 루카스를 자주 볼 수 없다는 것입니다. 전처 '루스'와의 사이는 점점 더 나빠져만 가고 이대로 가다간 모든 것을 잃을 것 같은 두려움이 드와이트를 사로잡습니다.

그래도 그 두려움을 이겨내고 올바른 선택을 했어야 합니다. 조쉬를 친 그 순간 멈춰서 무엇이라도 했어야 합니다. 하다 못해 에단의 앞에 무릎 꿇고 죄송하다고 몇 번이고 엎드려 절을 했어야 합니다. 그러지 못하고 도망쳤으면 그다음 날이라도 전화기를 들고 자수했어야 합니다. 경찰서에 죄를 고백하러 갔을 때 경찰관이 어찌했건 그를 붙잡고 내가 범인이라고 고백했어야 합니다. 두려워서 그랬다는 것은 비겁한 변명일 뿐이지요.

에단의 삶이 하루하루 망가져 가고 있을 그때에 드와이트는 아들에게 아빠 노릇을 합니다. 사실 이 모든 것이 아들을 향한 사랑 때문이었다고 드와이트는 변명할 겁니다. 아들을 계속 보기 위해서라고요. 아들의 향한 이런 비뚤어진 애정은 에단의 삶뿐 아니라 자신의 삶까지 파멸로 몰고 가고 있는데도 말이죠.

이제 영영 볼 수 없을지도 모르는 아들에게 좋은 아버지의 모습을 남겨 주고 싶어 합니다. 살인자의 아들이라는 오명을 쓰고 평생을 살아갈 아들에게 그래도 우리 아버지는 좋은 사람이었다는 기억이 과연 며칠간의 노력으로 만들어질 수 있는 것인지 저는 잘 모르겠습니다.

아들에게 선물한 월드 시리즈. 그것으로 아버지에 대한 기억이 바뀔까요? 사진: 다음영화

그렇게 자수를 하루 이틀 미루고 경찰마저도 이제 손을 놓았을 때, 과연 에단이 알아차리지 않았다면 드와이트는 자수를 했을지가 의문입니다. 역시나 이 영화는 뭔가 잘못된 것 같습니다.

 

포커스가 맘에 들지 않는다

두 아버지 모두 망가진 삶으로 파멸의 길을 걷고 있습니다. 영화를 보는 내내 우리는 에단의 고통에 공감하면서도 죄책감에 시달리는 드와이트에 더 주목하게 됩니다. 에단이 알아차리지 않았더라도 어쩌면 드와이트가 결국 죄책감에 못 이겨 자수를 했을지도 모릅니다. 하지만 지금껏 드와이트의 행동을 미루어 보건대 그러지 않았을 것 같습니다.

에단이 결심 끝에 총을 구해 드와이트에게 들이댄 그 날, 드와이트는 오히려 에단에게 큰 소리를 칩니다. '나도 두려웠다'고요. 그러면서 빼앗은 총구를 자신의 머리에 갖다 대면서 '당기라고 말해달라' 에단을 재촉합니다. 스스로는 할 수 없다는 뜻입니다. 자수도 그러했을 겁니다. 머리에 총을 쏘고 자살을 하든 자수를 해서 사회적으로 죽은 사람이 되든 드와이트에게 의미는 비슷합니다. 아들을 볼 수 없는 삶은 죽은 삶이나 다름없습니다.

사적 보복은 나쁘지만 과연 그러지 않았다면? 사진: 다음영화

하지만 우리가 그런 드와이트를 동정해야 할까요?

'저것 봐. 죄책감 때문에 잠도 제대로 못 자고. 감옥에 갔다 오면 영영 아들을 못 만날지도 몰라. 어떡해.'

레저베이션 로드는 우리에게 드와이트에 대한 동정심을 바라는 것처럼 저는 느꼈습니다. 그래서 저는 드와이트의 고뇌에 포커싱하고 있는 이 영화가 마음에 들지 않습니다.

 

제 점수는요

왓챠에서 봤습니다.

3.5점 주었습니다. 누군가는 '조커'와 '헐크'의 대결이라고 이야기하더군요. '호아킨 피닉스'가 악역이 아닌 피해자의 역으로 나오고, '마크 러팔로'가 악한데 악한가? 싶은 역할로 나오는 드문 영화임에는 분명합니다. 두 배우의 연기는 물론 훌륭하고요. 또한 에단의 아내로 나오는 '그레이스' 역의 '제니퍼 코넬리'의 연기도 굉장히 훌륭합니다. 원래 깊은 눈매를 가져서 그런지 슬픔을 너무나도 잘 표현했습니다. 어린 엘르 패닝도 반갑고요. 캐스팅이라던가 연기 면에서는 좋은 점수를 받아 마땅한 영화라고 생각합니다. 

그럼에도 3.5점이라는 점수를 준 것은 설정이 너무 작위적이어서입니다. 리뷰를 쓰다 보니 점수를 과하게 준 것 아닌가 생각이 듭니다. 저는 영화적 기법 같은 것은 잘 모릅니다. 영화가 나에게 주는 메시지가 어떤지, 내가 영화를 보고 어떤 것을 느꼈는지를 중요하게 생각하는데요. 이 영화의 주제가 '가해자도 힘들다'인 것 같아서 점수를 대폭 깎고 싶은 마음이 간절합니다. 하지만 한 번 볼만한 영화인 것은 확실합니다.

영화 '레저베이션 로드'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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