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맥이라는 건 어느 정도의 비중을 가질까.
사실 나는 이 인맥이라는 것에 대해서 꽤나 부정적인 생각을 가졌던 사람이다.
인맥으로 어느 회사에 들어갔다. 인맥으로 어떤 것을 따냈다.
이런 것들이 나에게는 부정부패의 한 축으로 밖에 보이지 않았었다.
대부분의 졸업생에 비해서 낮은 학점.
그렇다고 그 외의 활동을 열심히 했다는 증거로 회사에서 살피는
자격증이라는게 내게 있는 것도 아니었다.
지금도 내 이력서에 자격증이라고 한다면,
그나마도 졸업을 하고도 몇 개월 뒤에 딴 운전면허증이 고작이다.
대기업 이력서가 내는 족족 서류 탈락을 하는 현실에 좌절도 했지만
이런 이력서가 통과가 된다는 것도 사실 상식적으론 불가능한 일이었다.
내가 한창 이력서를 낼 적에는 남들 다 있는 운전면허증마저 없는 상태였으니까.
한창 이력서를 내던 지난 해,
나는 초등학교때부터 줄곧 가장 가깝다고 생각하는 나의 절친,
현우와 함께 술 한잔을 하고 있었다.
내가 구미로 내려오고 얼마 안되서 처음으로 같이 술 한잔 하자며 모인 자리.
엄마 카드로 기분 좋게 1차를 긁고 2차를 위해 발걸음을 옮기던 중에
얼마 전 써낸 입사지원서가 생각이 났었다.
그 곳은 다음 커뮤니케이션.
정말 되고 싶었고 그만큼 자소서도 공들여 썼었다.
그리고 그 날은 서류 발표가 나던 날이었다.
2차에서 술에 취해 반쯤 정신이 나간 현우와 마주 앉아 나는 문자 메세지로 불합격 통지를 받았다.
내가 낸 이력서의 꽤나 초입에 불과했지만
나름 공들여 쓴 자소서가 서류에서 탈락한 그 순간,
나는 이번 시즌 대기업 공채는 이미 물건너 갔음을 직관했다.
사람이라는 동물은 참으로 간사하기 짝이 없다.
99퍼센트 서류에서 탈락을 하고, 남은 1퍼센트는 기간을 맞추지 못해 스스로 탈락시켜버린
2011년의 대기업 공채.
그 당시 나는 사회에 대한 불만과 불신으로 가득 차 있었다.
열등감도 장난이 아니었을 것이다.
술만 먹으면 울며 신세한탄을 하는 나를 받아주는 내 일곱 친구들은
아마도 전생에 석가모니쯤 되지 않았을까.
그리고 그 다음 2012년 상반기 공채는 아예 입사지원조차 하지 않았다.
자포자기의 심정도 없진 않았지만, 나 자신을 리프레쉬 해야 한다는 생각이 강했다.
나는 지난 10년간 서울에서 살면서 너무나도 큰 좌절과 열등감을
내 안에 심어놓고 있었다. 나도 모르는 사이에.
나는 그 것들을 통째로 날려버릴 시간이 필요했다.
그래서 놀고 먹었다.
밤낮으로 드라마를 보고
디아블로3가 출시됐을 땐 폐인처럼 게임도 하고
그마저도 지겨워 졌을 땐 그냥 놀고 먹었다.
그럼에도 엄마, 아빠는 재촉을 하지 않으셨다.
'급하게 마음 먹지 말고 천천히 생각해 보아라'가 엄마, 아빠의 배려였다.
그렇게 용돈만 축내는 1년의 시간이 지난 지금,
나는 천상천하 유아독존, 행복한 사나이로 변해 있다.
내 안에서 행복을 찾을 수 있는(지금 당장의 짧은 생각일지라도) 지금 이 순간
세상이 나에게 호의적이다.
나와 육촌 사이인 어느 분께서 모 대기업의 전무이사이시란다.
친척을 통해서 이력서만 넣으면 회사에 넣어주시겠다는 소식을 들었다.
처음 이 이야기를 들었을 때는 아직 열등감과 좌절감에 빠져 허우적 대던 때였다.
그 때 나는 짜증부터 냈었다.
두 번째 이 이야기가 나왔을 때는 어느 정도 벗어나던 시기였다.
과연 내가 그렇게 회사에 들어가서 버텨낼 수 있을까 고민이 들었다.
그러다가 나는 내 적성이 무엇인지 어렴풋이 깨달았다.
어렸을 때부터 내가 가장 잘 하던 것, 그리고 내가 스스로 공부해서 얻은 것들.
그래서 나는 개발자가 되기로 결심했다.
막상 개발자가 되기로 결심한 이후에도 앞은 그저 깜깜하기만 했다.
자바를 공부하고는 있지만 저 두꺼운 책의 책장 한 페이지를 넘기기에도 힘이 들었다.
목표는 8월 달 안에 책의 반 이상을 소화해 내는 것이었지만
그 반의 반도 못하고 있는 상황이었다.
하지만, 이 때 갑자기 인맥이 빛을 발하기 시작한다.
절친한 후배가 졸업 후 자바를 공부해서 개발자로 회사를 다니고 있었던 것이다.
두루두루 넓게 사람을 사귀는 것과는 거리가 먼 나이지만
나에게 중요한 사람들, 내가 좋아하는 사람들을 끔찍히 아끼는 나이다.
그리고 나는 지금 그 중요한 사람 덕분에 한 회사에 취업을 하느냐 마느냐 하는 기로에 서 있다.
서울에 다녀 와서 후배와 이런 저런 이야기도 나누고,
간만에 서울에 다녀온 소감도 나름 적지 않았기에
다녀 오자마자 엄마한테 술 한잔을 하자고 얘기를 했었다.
그리고 집 앞 닭갈비 집에서 해강이에게 배운 소맥을 기울이며
엄마와 이런 저런 이야기를 나눴다.
나에게 제1의 술친구는 엄마이다.
오늘도 엄마는 회사 동료들과의 술자리 중에 '나랑 술 먹자'라는 내 전화를 받으시고는
집으로 곧장 달려오셨다.
오늘도 나는 집 앞 닭갈비 집에서 엄마와 함께 소맥을 기울였다.
지난 번 술자리에서 엄마가 얘기했던 것이 기억에 난다.
'인맥으로 들어간 회사면 어떠냐. 요새 인맥없이 되는 게 뭐가 있냐' 고.
곰곰이 생각해 보면 사실 그렇다.
대기업에서 낙하산을 제외한 나머지 인원을 공채로 뽑는다는 것이
기정 사실처럼 받아들여지고 있는 현실.
인맥이고 뭐고 쥐뿔도 없는 사람이 '이십대 태반이 백수'가 되는 이런 현실에서
어쩌면 나는 비겁하게 생업의 끈을 잡은 한 사람이 될 지도 모르겠다.
이방원의 시가 떠오른다.
'이런 들 어떠하며 저런 들 어떠하리.
만수산 드렁칡이 얽혀진 들 어떠하리.
우리도 이 같이 얽혀져 백년까지 누리고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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