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학교 1학년이었나.
이제는 기억도 꽤나 가물가물한 어느날이었다.
우리 가족은 거실에 신문지를 펼쳐놓고
버너위에 불판을 깔아놓고 지글지글 삼겹살을 굽고 있었다.
무슨 얘기 중이었는지는 모르겠지만
나는 이런 얘기를 했다.
"나는 우리 아빠는 성공한 사람이라고 생각한다.
화목한 가정을 이뤘고 안정적인 삶을 살고 있으니까.
난 아빠를 존경해."
지금 생각해보면 참 잔망스럽기 그지 없다.
지금은 우리 집 사정도 그때와 많이 다르기도 하고,
아빠는 어느덧 오십을 훌쩍 넘긴 오십중반의 아저씨가 되었다.
내 나이 열넷의 아버지는 더 없이 잘 생기고 큰 사람이었는데,
이제는 많이 마르시고 외형적으로는 확실히 많이 초라해지셨다.
그러나 나는 우리 아빠를 여전히 존경하고 있다.
내가 아빠의 인생에 영향을 많이 받았음은 두말 할 것도 없지만,
지난 1년간 나는 백수로, 그리고 아빠는 여전히 우리집안의 가장으로 다시 한지붕에 살면서
아빠의 인성에 무한한 감동을 받았다.
어쩌면 나보다 마음이 급하실 아빠이지만 재촉 한 번 싫은 소리 한번 하지 않으시고,
오히려 느긋하게 마음 먹으라며 도닥거려 주시고, 묵묵히 지켜만 봐주신다.
그렇게 백수로 살면서 지난 1년간
나는 전에 없던 행복을 얻었다.
아직 뱃살도 남아 있는데 자신감도 생기고(어디서 나오는 자신감인지는 몰라도)
나의 능력, 특히 내가 타고났을 거라고 생각하는 능력에 확신을 가졌다.
좋아하는 일도 찾았고 훨씬 여유로운 자세를 갖게 되었다.
역시 문화생활은 여유가 있을 때만 오로지 영유할 수 있는 것인지,
나는 지난 1년간 책은 몇권 읽지 않았어도 수많은 컨텐츠를 경험했다.
글의 위력은 실로 대단하다.
글이라는 건 실제로는 내면의 투영이라기보다는 내면의 포장이다.
더 읽기 쉽게, 혹은 더 로맨틱하게, 혹은 더 드라마틱하게.
수많은 컨텐츠 가운데 나는 존경하게 된 사람이 되었다.
이미 트위터리안 사이에서는 유명한 트위터 요정 '김얀'님이다.
나는 글을 쓸 때마다 느낀다.
아무리 내가 나의 섬세한 내면을 찾아내어 달콤하게 표현을 하더라도
여자의 섬세한 감수성으로 표현된 글에는 못 미친다고.
김얀님의 글을 읽으면서 그것을 또 한번 확인하게 된 꼴이 되었지만
오히려 그 감수성과 표현력에 너무 감동을 받았다.
어쩌면 포장이 되었을지 모르는 그 분의 내면을 글로나마 보게 되었고
그 내면에 감동했고 존경하게 되었다.
막상 김얀님을 존경한다고 이야기하며 표현하려 하니
내가 느낀 그 분의 내공에 내 필력이 도저히 미치지 못한다.
그래서 그냥 링크로 대신하려 한다.
김얀님의 블로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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