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1년 11월 5일 치뤄진 수학능력시험
그리고 그 성적이 발표되던 날
단군이래 최저학력이라는 되도 안하는 기사가 쏟아진다
우리 02학번들이 치른 그 수능이다
시험의 난이도나 갑작스레 바뀐 교육과정 이 모든걸 생각지도 않고
한반도 반만년역사에서 한해에 태어난 아이들을 모조리 저능아 취급을 하다니
언론이 만들어낸 최고의 망언이라 해도 무방할 것 같다

우리 02학번들과 그로부터 몇년 차이나지 않는 우리 선후배들이
길지 않은 인생이지만 어떻게 살아왔는지를 이해한다면
결코 저런 망언은 하지 못했으리라


초등학교 6학년때였던 걸로 기억하는데
쉬는 시간 이후 갑자기 수업 시작이 지연이 되고
철없던 우리 친구들은 그저 해맑게 잡담을 해대고 있었다
심각해진 선생님들께서는 서로 이런저런 말씀을 나누셨고
이후 우리에게 IMF에 대해 말씀을 해주셨다
그러나 우리들은 그게 그렇게 큰 일인줄로 생각지는 않았다

그러나 머지않아 큰 일이 되어 다가왔다
한 친구의 아버지가 직장을 잃은 것이다
선생님께서는 그 친구를 위로하시며 이런 일을 가지고 친구를 놀리거나
그 어떤 피해를 줘서는 안된다고 하셨다

그것은 시작일뿐이었던 것 같다
이내 중학교에 가 더 이상 초등학교 친구들 가족의 실직 소식을 듣지 않았던 것뿐
중학교 친구들도 사정은 똑같았다
누구누구네 아버지가 회사를 관두셨더라 하는 이야기는 심심치 않게 들려왔다
그러나 그런 일을 가십거리로 삼지 않는다는 배움을 받은 우리들은
누구도 그걸 사사롭게 입에 올리지 않았다


비단 회사원이었던 부모님을 가진 아이들만 그런 고통을 겪은건 아니었다
내 아버지는 공무원이시다
한푼두푼 착실히 모아가며 행복한 가정을 꾸린 나의 가장은
내가 초등학교 5학년 때 지금 살고 있는 집으로 이사를 했다
드디어 이룬 내집장만의 꿈 그 안에 우리 가족은 참으로 행복했었다
우리의 보금자리에서 거실에 신문지를 펴고
그위에 둥글게 모여앉아 삼겹살을 구워먹던 행복한 한때는 아직도 내 기억에
아름답게 남아있다

그리고 몇해지나지 않아 내가 14살때 우리가족은 다시 한번 이사를 가기로 한다
내가 다니던 학교가 너무 먼거리였기 때문이고 앞으로 또 중학교에 입학하게 될 동생을 생각해
또 몇해동안 모았던 돈을 보태고 보태 이사를 결심하신 것이다
살던 집을 내놓고 집을 사겠다던 신혼부부가 찾아왔다
그렇게 계약서를 쓰고 오늘 이사할까 내일 이사할까 얘기를 나누던 중 일이 벌어졌나보다
어머니는 그동안 새집장만을 위해 부업을 하며 모았던 50만원을 신혼부부에게 주고 미안하다고 돌려보냈고
아버지는 불같이 화를 내셨다
친구를 믿고 보증을 서준 아버지는 그 친구의 사업이 망하게 되고
엄청난 빚을 지게 되셨다
내집마련에 이어서 또다시 새로운 보금자리를 꾸미려던
우리 가족의 행복한 나날들은 그날로 끝이었다
그리고 우리는 아직도 그때 그 집에서 살고 있다


그렇게 우리 IMF세대들은 격정적인 사춘기 시절을 보냈다
누구보다 예민할 나이에 저마다 가정에 아픔을 지니고
남의 가정의 아픔을 들추지 않으면서 자신의 가정의 아픔은 속으로 삭여야 했다


그런 IMF의 여파인지는 몰라도 이상하리만큼 내 주변엔
학자금 대출을 받아야하는 친구들이 많았다
나 역시도 그 중 한사람이었다
드디어 이제 졸업을 하게 되었는데
나에게 남은건 내가 앞으로 취직을 해 한해 연봉을 그대로 바쳐도
못갚을 대출금과 다달이 10만원이 넘게 빠져나가는 이자 뿐이다

우리 친구들 사이에서는 이런 이야기가 있었다
IMF때문에 몇년 사이에 내집 장만이 가능한 세대와
평생을 전세로 살아야하는 세대가 갈렸다고 말이다
정말 우리보다 몇해 선배들은 일찍이 취직해 벌써 내집장만을 한 선배들이 있지만
우리 동기들 사이에선 괜찮은 직장을 구했다는 것 그 자체도
너무나 안도해야할 일이 되어버렸다

벌써 15년이 지난 IMF사태이지만 이 여파가 아직도 사라진 것은 아닌가보다
등록금에 신음하는 대학생들은 늘어만 가고 취업난은 여전하기만 하다
그래도 그 모든 어려움을 딛고
강인한 우리 IMF세대들은 사회초년생으로 저마다 뿌리를 내리고 
우리나라 산업에 산소를 불어넣고 있다


누가 우리들에게 단군이래 최저학력이라고 말할 수 있을까
수양대군이 형의 아들을 몰아내고 왕위에 올랐던 그 시기보다
어쩌면 더 격정적인 세월을 겪으면서 살아온 우리들이다
우리들이 대한민국의 핵심인력이 될 그날이 오면
아마도 우리들은 다시는 IMF같은 사태는 겪지 않기 위해
그 모든 사력을 다하지 않을까

그래서 나는 대한민국의 미래를 믿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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