몇 일 전의 일입니다.
간만에 서울나들이 갔다가 구미로 돌아오려고 고속터미널로 향했습니다.
간밤에 충전 좀 시켜놓을 걸, 가는 길에 배터리가 너무 간당간당 하더라구요.
타이밍 좋게 버스표를 끊어놓고 나와서 담배를 한 대 입에 물고 나니 핸드폰이 꺼졌습니다.
이걸 충전을 해야하나 말아야하나.
버스 시간은 가까워 오는데 한참을 고민했습니다.
충전은 겨우 천원인데 저는 카드밖에 없었거든요.
굳이 미안해 할 일은 아닌데 괜히 미안한 맘이 들어서 망설이다가
한 쪽 구석 매표소 앞에 있는 가게에 가서 핸드폰 충전을 맡겼습니다.
달랑 요것만 카드결제하기 좀 그러니까 핫식스도 큰걸로 한병 사서.
아뿔싸.
근데 카드가 안된다고 합니다.
제 핸드폰을 충전기 위에 올려놓으시며
저~ 쪽에 가면 인출기가 있으니 뽑아오라고 하시네요.
머리 속이 바빠지기 시작합니다.
내가 마지막으로 봤던 잔액에서 버스표를 끊고 난 후에는 잔액이 얼마일까.
만원보다는 많을까 적을까.
엄마표 신용카드에 체크카드를 쌍으로 굴리며 현금과 무관하게 살다보니
이런 일도 생기기도 하더라구요.
역시나.
잔액은 7천7백원이더군요.
이럴 때 7이 두개라니. 럭키하기도 하여라.
서둘러 가게로 돌아가니 할머니께서 조금이라도 더 시원하라고
핫식스는 다시 냉장고에 넣어놨다고 하십니다.
할머니께 자초지정을 설명했습니다.
잔액이 부족해서 돈을 못 뽑아왔으니
죄송하지만 핸드폰 다시 주셔야 할 것 같다고.
현금도 안들고 다닌다고 궁시렁궁시렁 하실 줄 알았습니다.
저도 이 상황이 정말 짜증나고 싫었습니다.
왜 하필 이럴 때 현금인출기에서 돈을 뽑지도 못할 잔액이 남아있는거야.
할머니께서 말씀하십니다.
"버스시간이 언제야?"
"1시 10분이요."
"얼마 안남았는데 10분이라도 그냥 충전하고 가. 급속 충전이라 많이 찰거야."
저는 "고맙습니다" 한마디를 하고는
뒤돌아서서 생각에 잠겼습니다.
그래. 사실 핸드폰 충전 저거 잠깐 해주는 거 별거 아니잖아.
근데 너무 고맙네. 저 할머니.
꺼진 핸드폰을 부여잡고 노래도 못들으며
오지 않는 잠을 억지로 청할 생각을 하니 상상도 하기 싫었습니다.
핸드폰을 잠시 맡겨놓은 10분여동안 가게에는 어떤 한 아이가
군것질 거리를 사러 왔다갔고 어떤 아주머니도 껌을 하나 사가셨습니다.
고속터미널 안 가게들은 다들 좀 야박하다고만 생각했었는데
이 할머니는 참 친절하시네요.
작은 것 하나 사들고 돌아서는 뒤통수에 '고마워요. 다음에 또 와요.' 라는 인사를 꼬박꼬박 하십니다.
1시 3분이 되어 할머니께 핸드폰을 다시 받아들고
연신 감사의 뜻을 전했습니다.
"고맙습니다. 정말 고맙습니다. 다음에 올라올 때 꼭 보답할게요."
꼭 잊지 않고 박카스 한병이라도 가져다 드려야겠습니다.
이런 따뜻한 분들 때문에 아직은 세상이 참 살기 좋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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