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이브스 아웃> 미스터리의 새로운 틀을 제시한 영화
영화 '나이브스 아웃'은 명탐정 코난이나 소년탐정 김전일을 좋아했던 분들이라면, 소설 셜록홈스나 아가사 크리스티의 작품들을 좋아했던 분들이라면 흥미를 가지실만한 미스터리 영화입니다. '범인은 이 안에 있다'로 시작해서 점차 사건의 내막이 드러나는 것이 일반적인 추리물의 흐름인데요. 나이브스 아웃은 새로운 전개 방식으로 관객을 의아함에 빠뜨리면서 마침내 사건의 내막이 드러났을 때 추리물에서 얻을 수 있는 통쾌함을 선사하는 Fine Movie입니다.
이 리뷰는 영화 '나이브스 아웃'에 대한 스포일러를 포함하고 있습니다. 원치 않으시는 분은 영화를 먼저 보고 오시기 바랍니다.
색다른 전개 방식으로 신선한 추리물을 선사했다
탐정 '블랑'(다니엘 크레이그 분)이 본격적으로 수사를 시작하면서 우리는 '할런 크롬비'가 어떻게 죽었는지 이미 알게 됩니다. 그리고 이후 스토리는 마치 간병인 '마르타'가 범인임을 숨길 수 있을 것이냐에 대한 것처럼 흘러갑니다. 할런 크롬비가 왜 죽었는지에 대한 전말을 파헤쳐 가는 것이 보통 추리물의 전개인데요. '나이브스 아웃'은 이미 할런 크롬비가 어떻게 죽음을 맞이했는지 알고서 이야기가 진행되는 것이 흥미롭습니다.
마르타에 대한 설정도 흥미롭습니다. 마르타는 할런의 죽음에 직접적으로 연관된 사람입니다. 그런데 그녀에게는 거짓말을 할 수 없는 신체적인 약점이 있죠. 거짓말을 하면 구토를 할 수밖에 없는 마르타는 다른 사람에게 진실만을 말할 것처럼 비칩니다. 그리고 진실만 이야기할 수 있는 그녀가 어떻게 그날의 일을 끝까지 숨길 수 있을지 지켜보는 재미가 있습니다.
할런의 죽음은 비록 마르타의 실수에서 비롯되었지만 할런 스스로가 선택한 것이었습니다. 그럼에도 마르타는 큰 죄책감에 빠져 있고 할런의 바람대로 모든 전말을 숨기기 위해 노력합니다. 그리고 블랑이 수사를 계속하면서 진행되는 마르타의 행동은 진짜 범인의 그것과 비슷합니다. 블랑이 진실에 접근해갈 때마다 마르타는 어설프게나마 그것을 은폐하려고 온갖 노력을 기울입니다. 하지만 상황은 마르타의 뜻대로 흘러가지 않고 마침내 마르타는 가정부 '프란'의 목숨을 구하기 위해 모든 것을 포기합니다. 그리고 마르타는 그동안 자신이 숨겨온 이야기를 가감 없이 블랑에게 털어놓게 됩니다. 이야기는 결국 이렇게 '신데렐라가 될 뻔한 이민자의 꿈'으로 끝나는 듯했지만, 감독이 그토록 애를 들여 꽁꽁 숨겨놓았던 반전은 이제 비로소 시작입니다.
너무 꽁꽁 숨겼다
마르타가 모든 것을 포기하고 모두에게 진실을 알리려 할 때 블랑은 모든 추리를 마치고 마르타를 가로막습니다. 그리고 꽁꽁 숨겨져 있던 진짜 사건의 내막이 드러납니다. 어쩌면 크리스 에반스가 캐스팅되었을 때부터 사람들은 그를 의심했을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영화를 보는 내내 '랜섬'의 존재감이 크지 않기 때문에 우리는 숨겨진 반전을 찾아내기가 쉽지 않습니다.
추리물의 묘미는 슬쩍슬쩍 던져지는 작은 단서들을 모아 사건의 내막, 즉 트릭을 밝혀 내는 데에 있다고 생각합니다. 바라보는 관객 스스로가 탐정이 되어 실체에 접근해 가는 과정 그 자체가 묘미인 것이죠. 하지만 이 영화에서는 그런 단서들도 너무 적고 사람들이 추리하기 힘들었다고 생각합니다. 블랑이 알려주는 그 날의 진실에 우리는 의존할 수밖에 없었던 거죠. 실제로 랜섬은 알리바이를 조작했고, 약병을 바꿔치기해서 살인을 계획했습니다. 그리고 사건 후에도 마르타를 망가뜨리기 위해 마르타에게 접근하는 등 많은 일을 했죠. 하지만 그것에 대한 단서는 너무 미약했다고 봅니다. 특히 약병을 바꿔치기했다는 사실은 아무리 추리하려야 추리하기 힘들었을 거라고 봅니다. 그 점에서 블랑은 대단한 추리를 한 명탐정이 맞지만 영화 '나이브스 아웃'은 Best Movie 까진 못되고 Fine Movie 정도에 머무는 것이라 생각합니다.
영화에서 마르타를 다루는 방식도 추리를 방해하기 위한 또 다른 요소입니다. 마르타는 여러 가지 방해 공작으로 블랑의 수사에 훼방을 놓습니다. CCTV 테이프를 지워버리려 하고, 부러진 구조물을 멀리 던져버립니다. 추격전 끝에 잡혔을 때는 랜섬 때문에 그러한 것이라며 거짓말까지 합니다. 이렇듯 여러 가지 나쁜 공작을 펼친 마르타이지만 그녀는 본디 착하디 착한 사람입니다. 그렇기에 할런이 모든 유산을 넘겨준 것이며 그 유산을 모두 포기하면서까지 프란을 살리려고 할 수 있었던 것입니다. 영화는 진범을 숨기기 위해 마르타의 부정을 지속적으로 보여주면서 관객의 시선을 교란시켰고 그것은 결국 '선한 심성'을 가진 마르타가 결국 승리한다는 궁극적인 스토리를 살짝 훼손했다는 느낌이 듭니다. 중반부에 나오는 마르타의 행동과 본디 착하디 착한 마르타의 선함이 배치되기 때문입니다.
영화 그 외의 이야기
시작하자마자 죽어 있었지만 영화 내내 엄청난 존재감을 보여주었던 할런 크롬비 역의 크리스토퍼 플러머는 한 달 전인 2021년 2월 5일 고인이 되었습니다. 캐나다 출신의 배우인 플러머는 카리스마 있는 연기로 캐나다에서 많은 사랑을 받는 국민배우였는데요. 실제로 돌아가셨다고 하니 기분이 묘하네요. 고민의 명복을 빕니다.
제 점수는요
4점 주었습니다. 독특한 전개와 마르타에 대한 설정, '범인은 이 안에 있다'에 대한 그리움이 이 영화를 즐겁게 만드는 요인이었던 것 같습니다. 추리를 방해하기 위한 많은 장치들이 오히려 역으로 작용하지 않았다면 별점이 후한 저는 쉽게 5점을 줄 수 있었을 텐데 그 점이 조금 아쉽네요.
넷플릭스 추천영화 '나이브스 아웃'이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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