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트릿> 마더를 본 것만 같은 찜찜함

보고 나면 이상하게 찝찝함이 남는 영화가 있습니다. 한국 영화 중에서는 '마더'가 대표적인데요. 이 영화가 저에게는 비슷한 느낌으로 다가왔습니다. 킬리언 머피 주연의 스릴러 '리트릿'입니다.

이 리뷰는 영화 '리트릿'에 대한 스포일러를 담고 있습니다. 원치 않으시는 분은 영화를 보고 오시기 바랍니다.

'리트릿(2011)' 영화 정보 바로 가기

 

군더더기가 거슬린다

영화 리트릿(2011)의 한국개봉포스터

이 영화의 스토리를 요약해보자면 '무인도에 들이닥친 불청객의 이야기'입니다. 유산 후 병원에서 퇴원하자마자 회사로 가버린 남편 때문에 화가 난 케이트, 그리고 그 일로 인해 소원해진 관계를 회복하기 위해 과거에 왔었던 무인도 별장에 다시 찾은 '마틴'이 무인도에서 휴가를 보내던 중 우연히 쓰러진 '잭'을 발견하게 되고 괴이한 행동을 하는 잭으로부터 도망치려 하다가 결국은 모두가 비극을 맞게 되는 이야기네요.

케이트는 기자 출신으로 무인도에서도 끊임없이 글을 씁니다. 그리고 그 글은 사뭇 의미심장합니다. '남편이 만약에 이 모든 사실을 알게 된다면 내 결혼생활은 끝이 날 것이다'라고 하니 케이트가 감추고 있는 진실을 마틴이 알게 되면 엄청난 후폭풍이 있을 거라고 짐작하게 합니다. 그리고 잭에 의해서 마틴은 그 사실을 알게 되는데요. 그런데 아무것도 일어나지 않았습니다. 그 "엄청난" 일이라는 것은 케이트가 어떻게 임신을 하게 됐느냐인데 부정도 아닌, 실수도 아닌 그저 의도한 임신이라는 것뿐이었습니다. 전개상 크게 영향이 있는 '진실'은 아니었기에 사실 군더더기 중 하나였습니다.

그들이 지난번 다녀 갔을 때 방명록에서도 언급했었던 직업(기자, 건축가)도 뭔가 의미가 있을까 했으나 전혀 상관없이 그저 직업이었을 뿐이었고요.   

부부의 불화 때문에 혹시 잭이랑 케이트가? 하는 안타까운 상상을 하신 분도 있겠죠. 사진: 다음영화

사실 마틴이 건축가라는 설정과 케이트가 기자라는 설정, 그리고 그 둘 사이에 있었던 불화는 이 영화의 전개에 아무런 영향을 주지 못합니다. 영화는 오로지 불청객 잭과 그가 벌이는 괴이한 행동에 포커스를 맞추고 있습니다. 그리고 나름의 반전을 위해 후반부로 열심히 달려갑니다. 무언가 있을 것 같다는 기대들을 무참히 짓밟고 '전염병은 사실이고 사실 잭은 피해자였어'로 끝맺는 이 영화의 결말과는 관계없는 무수한 설정들이 거슬리는 영화네요.

 

잭을 거짓말을 하지 않았다

영화를 다 보고 나면 일단 허무함이 밀어닥칩니다. 그나마 러닝 타임이 한 시간 반 밖에 안돼서 다행이라고 해야 할까요. 하지만 그 한 시간 반 동안 세 명의 고군분투를 지켜보며 느낀 찝찝함(소위 말하는 발암)은 달랠 길이 없네요.

우연히 찾아온 불청객 '잭'은 따지고 보면 진실을 말하지 않았을 뿐 거짓말은 하지 않았습니다. 영화 내내 괴이한 행동으로 마틴과 케이트 부부뿐 아니라 보는 이마저 괴롭게 했던 이 불청객은 알고 보면 억울 하디 억울한 피해자였을 뿐이죠. 잭이 한 말들은 조금의 생략이 있을 뿐 거짓이 없습니다.

"(내가 전염병을 옮기고 다니는 숙주인데) 온 세상에 전염병이 창궐해서 우리는 이 집에서 나가면 안 되고 (사실은 나 때문에 너네가 나가면 안 되는 거지만), 내 와이프는 (나한테) 전염돼서 죽었어."

뭐 이런 거네요.

알고보면 세상 억울한 남자 '잭'. 사진: 다음영화

결국 모든 내막을 털어놓는 잭은 더더욱 진실만을 말했습니다. '저들의 말을 믿지 말아야 한다. 백신이 있다는 것도 거짓말이다. 저들에게 가면 너희를 죽일 것이다.' 하지만 지금껏 위협적인 태도로 이 부부를 힘들게 해온 잭의 말은 전혀 믿음이 가지 않고 되려 회유책처럼 들립니다. 이제까지 쌓아온 잭에 대한 찝찝함을 연민으로 바꿔야 하나 헷갈려하고 있을 때 겨우 살아남은 케이트마저 단발의 총성으로 허무하게 쓰러집니다. 이럴 때 우리가 느끼는 당혹스러움은 누가 책임지나요. 

 

Retreat은 무엇을 의미하나

'Retreat'은 회수, 철수와 같은 것을 뜻합니다. 무언가를 되찾아 오거나, 어딘가에서 돌아가거나 둘 중 하나일 텐데요. 이들의 배경이 무인도이기 때문에 마침내 무인도에서 돌아가게 되는 것이 Retreat이라고 짐작하고 영화를 봤습니다. 마틴은 철수에 실패했습니다. 고통스러운 전염병에 걸려 결국 아내 케이트의 손으로 마틴의 고통을 덜어주어야만 했으니까요. 그리고 케이트도 철수에 실패했습니다. 이제 모든 것을 끝내고 마틴의 시체를 안고 돌아가려 할 때 결국은 실패하고 말죠. 케이트의 손에 죽은 잭은 말할 것도 없습니다.

결국 Retreat은 도망친 실험체에 대한 회수를 의미했습니다. 그리고 실험체의 위험성 때문에 그와 접촉한 사람들까지 죽여버리는 것을 의미했죠. 제목을 통해서 마틴과 케이트가 결국은 이 섬에서 빠져나갈 것이라는 희망을 품게 하고, 실제로는 이 모든 것이 잭을 회수하려는 군대의 작전이었다는 것으로 끝맺는 영화의 교묘한 제목에 감탄합니다.

 

캐스팅이 아깝다

건축가 '마틴' 역의 킬리언 머피

평범한 장면도 뭔가 있을 것 같은 느낌이 들게 하는 킬리언 머피. 사진: 다음영화

놀란 감독의 뮤즈 킬리언 머피입니다. 유독 파란색의 신비로운 눈으로 신비로운 느낌을 들게 하는 이 배우가 일반인 역할을 하기 때문에 더욱 리트릿을 기다린 사람이 많다고 합니다. 안타깝네요.

 

불청객 '잭' 역의 제이미 벨

훌륭하게 큰 제이미 벨. 사진:다음영화

빌리 엘리어트로 유명한 제이미 벨이 이렇게나 컸습니다. 작품을 잘 골라야 할 텐데요.

 

제 점수는요

왓챠에서 봤습니다.

2점 줬습니다. 저는 별점에 참 후한 편인데요. 영화를 보고 난 다음에 느낀 허무함과 찝찝함 때문에 좋은 점수는 주지 못했습니다. 영화를 본지 이제 일주일쯤 되어가는데 벌써 리트릿이라는 제목에서 무슨 영화였지?라고 묻게 만들 정도로 기억에 나지 않는 것도 한 몫하네요. 무려 킬리언 머피랑 제이미 벨 주연인데! 2점도 후하지 않나요.

왓챠 추천영화는 아니고 왓챠에 있는 영화, 리트릿이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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