빅뱅이론의 어머니들과 Parenthood
아이를 낳고 나니 대화 주제가 자연스럽게 아이로 이어집니다. 나도 모르는 사이에 회사에서 주로 대화하는 사람들도 어린 아이를 가진 동료들이 되었고 친구들과 대화를 할 때도 아이 이야기가 주를 이루게 됩니다.
세상 모든 부모들이 그렇듯 어떻게 아이를 키울 것인가가 가장 큰 고민거리입니다. 신생아 때는 몰랐지만 아이가 15개월을 넘기고 점점 주관이 생기기 시작하면서 훈육이란 주제에 대해 아내와 이야기하는 시간이 부쩍 늘었습니다.
전화영어 중에 회사에서 동료와 어떤 주제로 이야기하는지 물어보길래 Being a parent 에 대한 이야기를 많이 한다고 했더니 저에게 그럴 때 쓰는 단어를 알려주더군요. 바로 Parenthood입니다. 참 재미있는 단어입니다. Childhood는 누구나 겪고 마침내 지나가는 과정이지만 Parenthood는 선택해서 마주하게 되고 결코 끝나지 않는다는 점에서 더욱 흥미롭습니다.
무조건적이고 무한한 애정의 훈육: 메리 쿠퍼
미국의 최장수 시트콤인 빅뱅이론은 많은 사람들의 사랑을 받고 있습니다. 저도 정주행하면서 벌써 시즌 9의 절반 이상을 지나가고 있습니다. 마지막 시즌까지 보게 되면 참 아쉬울 것 같네요. 문득 빅뱅이론에 등장하는 부모들을 보면서 Parenthood에 대해서 다시금 생각하는 시간을 가졌습니다.
빅뱅이론의 가장 메인 캐릭터이자 상징이라 할 수 있는 쉘던은 천재이면서 Nerd of Nerd입니다. 천재 이론물리학자이면서 만화와 영화 캐릭터 덕후이죠. 사회성이 떨어져 만나는 사람마다 나가떨어지게 하는 그이지만 그런 그가 한결같이 순종하는 사람이 있습니다. 바로 쉘던의 어머니 ‘메리 쿠퍼’ 입니다.
메리 쿠퍼는 독실한 개신교 신자입니다. 너무 독실한 나머지 다른 종교와 인종에 대해서는 철저히 무시하기도 하는데요. 이런 점은 어떤 면에서는 쉘던과 너무도 비슷한 측면이 있습니다. 쉘던은 본인이 좋아하는 것들에는 매우 맹목적인 측면이 있는데 메리 쿠퍼의 종교에 대한 독실함이 쉘던에게는 그런 식으로 작용한 것이 아닐까 싶기도 합니다.
메리 쿠퍼는 그런 점만 제외하면 굉장히 이상적인 부모입니다. 누구도 컨트롤할 수 없는 쉘던을 손바닥 위에 올려놓고 조종할 수 있는 것이 그녀입니다. 무조건적인 사랑으로 쉘던을 보듬으면서 쉘던이 어떤 문제를 일으키던 항상 애정으로 해결합니다.
엄마의 사랑마저 성취를 통해 쟁취하는 것이다: 베벌리 호프스테더
쉘던의 룸메이트이자 또다른 천재 과학자 레너드 또한 덕후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쉘던과 라제쉬, 하워드와 죽이 잘 맞죠. 레너드는 메인 캐릭터 중 가장 상식에 가까운 인물입니다. 또한 쉘던을 대하는 태도를 보면 굉장히 선한 사람이라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레너드의 어머니 또한 극 중에 등장하는데요. 바로 ‘베벌리 호프스테더’입니다.
베벌리 호프스테더는 쉘던의 복제판이라고 할만큼 쉘던과 비슷한 성격을 가지고 있습니다. 누가 보면 쉘던의 어머니가 아닐까 싶을 정도로요. 베벌리 호프스테더 본인도 저명한 신경과학자이자 심리학자이고 레너드의 다른 가족들도 모두 천재라고 합니다. 그 중에 레너드가 가장 덜 똑똑한 모양인지 레너드는 종종 그런 가족에게서 느낀 소외감을 토로하곤 했습니다.
베벌리 호프스테더의 양육방식은 상벌을 통한 훈육입니다. 심지어 어머니의 사랑마저도 무언가 성취를 통해 상으로 받아야 할 정도였습니다. 레너드는 그런 어머니의 애정을 항상 갈구했지만 베벌리 호프스테더는 제대로된 포옹도 해주지 않는 엄격한 부모였죠. 물론 결벽증도 한몫 했겠지만요.
빅뱅이론 시즌 8에서 두 부모가 직접 만나게 됩니다. 과학자 대 종교인으로 신경전을 벌이던 두 사람의 만남 끝에 베벌리 호프스테더가 한 말이 참 기억에 남습니다. “세상에는 아이를 키우는 방법이 하나가 아니라는 걸 깨달았다.” 그러고는 이제부터는 무조건적인 애정으로 레너드를 대하겠다고 하면서 또 한번 어색하게 안아주어 웃음을 자아냈죠.
성취를 위해 상벌을 기반으로 한 훈육을 받은 레너드와 무조건적인 사랑으로 훈육받은 쉘던, 사뭇 다른 성장과정을 거쳤지만 둘 모두 훌륭한 인재임은 틀림이 없습니다. 베벌리 호프스테더가 무조건적인 사랑으로 레너드를 대했더라도 쉘던만큼 훌륭한 과학자가 될 수 있었다는 깨달음은 이제 막 아이를 키우는 저 같은 초보 부모에게 많은 생각을 하게끔 합니다.
다시 Parenthood
드라마이기 때문에 양 극단에 있는 두 부모와 다르게 우리는 현실 세계를 살고 있기 때문에 두 부모의 방식을 적절히 잘 섞어야 하겠습니다. 무조건적인 사랑이 때론 아이를 엇나가게 한다는 것을 우리는 경험으로 잘 알고 있습니다. 하지만 너무 엄격한 훈육으로 인해 엇나가는 사례도 많이 봐왔지요. 드라마로 보는 두 어머니는 이미 자식을 다 키운 뒤의 모습이지만 저 같은 초보 아빠들은 아직 현재 진행형입니다. 시도 때도 없이 울고 보채고 악을 쓰는 아이를 컨트롤하는 건 정말 힘든 일입니다. 그 가운데 현명한 훈육의 방법을 찾는 건 오롯이 우리의 몫이지요.
어느 소아과 선생님이 육아에 대해서 쓴 글에서 본 글귀로 마무리를 짓고 싶습니다. 아이에게 해가 되지 않는 선에서 부모가 편한 것이 가장 좋은 육아라고요. 훈육도 마찬가지이겠지요. 아이에게 해가 되지 않는 선에서 부모가 생각하는 선과 정의를 가르치면서 또한 편한 훈육이 가장 좋은 훈육일 것 같습니다.
글을 쓰다 보니 집에서 아빠를 기다릴 아이가 보고 싶네요.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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