열기구 비행 역사 상 가장 극적인 비행이 아니었을까

영화 벌룬(2018)의 한국 개봉 포스터

 

영화보다 더 영화 같은 실화

"열기구를 타고 동독을 탈출했다." 영화는 포스터에서 보시는 것처럼 열기구를 타고 동독을 탈출해 서독으로 두 가족의 이야기를 다루고 있습니다. 실화라는 걸 모르고 봤다면 설정이 너무 과했다며 혹평을 했을지도 모르겠습니다. 아무리 날아다니는 기구라도 그 느린 걸 타고 사회주의 국가를 탈출한다는 건 지나치게 스케일이 크고 너무 느린 것 같았습니다. 그리고 느릿느릿 날아가는 열기구의 이미지처럼 영화도 지루하겠거니 생각했었습니다. 이 모든 추측들이 이 영화에서는 다 빗나갔습니다.

'피터'와 '귄터' 가족은 열기구를 이용해 탈출할 계획을 세웁니다. '피터'의 아들 '프랑크'가 학교를 졸업해 사회로 나가게 된 날 마침 북풍이 불고 '피터' 가족은 탈출을 감행합니다. 열기구가 서독으로 가기 위해서는 북풍이 필요했습니다. 하지만 이 지역에서 북풍은 흔히 부는 바람이 아닙니다. 탈출의 성공확률이 낮은 만큼이나 북풍이 부는 날도 적었습니다. 다른 기상 상황도 도와줘야 했기에 결코 쉬운 일이 아니었죠. 심지어 '피터'의 앞 집에는 비밀경찰이 살고 있습니다.

그 어려운 일을 이들이 해냈습니다. 첫 번째 비행을 실패했음에도 희망을 잃지 않고 좁혀오는 수사망을 뚫고 결국 서독 땅을 밟은 두 가족의 이야기는 믿어지지 않을 만큼 극적입니다.  "역사상 가장 극적인 탈출 실화"라는 국내 포스터의 수식어는 '레알 트루'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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휴머니즘을 가득 담은 영화

가족

이들이 탈출하려고 하는 가장 큰 이유는 아이들입니다. 

피터 가족

첫 번째 비행 실패 후 '피터' 가족은 자신들의 도주 시도가 발각될까 봐 노심초사합니다. 피터와 그의 아내 '도리스'는 엄습해오는 불안감 속에서 아이들과 가족을 걱정합니다. 비밀경찰이 들이닥치는 악몽을 꾸는 것도, 그 꿈속에서 잃는 것도 모두 아이들이었습니다.

영화는 이들의 가족애를 통해서 동독에 사는 평범한 사람들을 보여주는 듯합니다. 그릇된 독재자들과 그들이 만든 시스템이 잘못되었을 뿐, 사회주의 국가에 사는 그들도 우리와 같이 가족을 이루고 서로를 사랑하며 살아갑니다. 

 

친구

첫 번째 비행은 피터 가족만이 하게 됩니다. 어린아이들을 염려한 귄터 가족은 모처럼 찾아온 기회를 포기합니다. 그렇게 피터 가족만이 탈출을 시도하게 됩니다. 열기구는 '귄터'와 '피터'가 함께 준비했습니다. '귄터'는 자신들끼리라도 탈출하려는 피터에게 부언 없이 성공을 기원해 줍니다. 그리고 이들은 서로를 염려합니다. 혹시나 탈출에 연루되어 남아있는 귄터 가족이 화를 입을까 봐 서로 연락하지 못하면서도 서로의 안녕을 간절하게 바랍니다.

귄터, 출처: https://www.theguardian.com/world/2018/oct/07/east-germany-balloon-escape-film-revives-german-identity-debate

영화를 보면서 이들 가족의 우정이 매우 부러웠습니다. 결혼을 하고 각자의 가정을 위해 살다 보면 친구들과 가깝게 지내기가 쉽지 않기 마련입니다. 탈출 실패에 따른 죽음도, 탈출 연류자로 낙인찍혀 평생을 비참하게 살 수도 있는 위험도 감내하는 이 두 가족의 우정은 인상 깊으면서도 부러움을 갖게 했습니다.

 

이웃

이들의 탈출 계획은 은밀하게 진행됐지만 귄터의 어린 아들 '피터'로 인해 발각될 위기를 맞습니다. 피터의 어린이집 교사는 '아버지가 매일 재봉틀로 무언가를 만든다'는 피터의 말을 통해 이들이 탈출 계획을 세우고 있음을 알아차리게 됩니다. 하지만 사이델 중령이 찾아와 수상한 점을 묻을 때 그녀는 이를 발설하지 않습니다. 동독의 선한 평범한 사람들은 서로를 지키기 위해 노력했을 거란 걸 알 수 있습니다.

프랑크의 여자 친구 '클라라'도 그렇습니다. 어리석게도 '프랑크'는 비밀경찰인 아버지를 둔 클라라에게 탈출 사실을 말해 버립니다. 클라라는 아버지에게 이들의 탈출 계획을 말할 수 있었지만 비밀을 지켜 주었습니다.

 

잘못된 사회 시스템

감시국가

동독은 지독한 감시국가였습니다. 서로가 서로를 감시하게끔 하는 시스템에서 아이를 기르기는 싫었을 겁니다.  피터가 베를린에 갔을 때 이 감시망은 더욱 부각됩니다. 도시 곳곳에 비밀경찰이 있고 미국 대사관 앞을 철통같이 지키고 있습니다. 탈출을 막기 위해서입니다. 살기 힘들어 탈출하는 나라라는 혹평을 듣기 싫어했던 동독은 더욱 감시를 강화하고 심지어 '거침없이 발포하라'라고 합니다. 그럴수록 동독은 점점 더 탈출하고 싶은 나라가 되어 갔을 겁니다.

서로가 서로를 감시하는 사회는 건강할 수 없습니다. 점점 서로를 믿지 못하게 되기 때문입니다. 

 

사이델 중령

사이델 중령은 흥미로운 인물입니다. 그는 등장부터 동독의 시스템에 의문을 던집니다. 그토록 가고 싶어 하는 자들이라면 곱게 보내주는 것이 동독에 더 이득이지 않냐고 말입니다. 반면에 국경 수비대에서 경계에 실패한 두 군인에게 책임을 묻는 장면에서는 누구보다도 동독을 대표하는 인물입니다. 

사이델 중령, 출처: https://magazine.kinolights.com/special-balloon-200110/

사이델 중령은 집요하게 피터 가족을 추격합니다. 그는 임무를 거의 완수할 뻔 했습니다. 하지만 코 앞에서 놓치고 말죠. 탈출에 성공한 귄터가 쏘아 올린 신호탄을 본 사이델 중령은 허탈한 웃음을 짓습니다. 저들을 잡지 못한 부하들에게 불 같이 화를 내는 장면을 예상했습니다. 하지만 사이델 중령은 등장했던 때와 마찬가지로 그들의 탈출을 초연히 받아들이는 듯합니다. 

결국 동독의 잘못된 사회 시스템이 사이델 중령이라는 캐릭터를 만들어 낸 것이 아닐까 생각해 봅니다. 현재 자신이 처한 상황에 순응하고 있을 뿐 그도 악인은 아닌 겁니다.

 

제 점수는요

왓챠에서 봤습니다.

5점 줬습니다. 독일 영화를 본 적이 있나 싶었습니다. 그리고 이렇게 좋은 영화를 볼 수 있어 감사했습니다. 역시 실화를 바탕으로 한 영화는 성공 확률이 높습니다.

왓챠 평균 별점: 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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