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른 살의 사춘기 꿈을 찾아 방황하다
영문학을 전공한 나는 다른 선배들이 일반적으로 선택했던 기업 사무직에는 관심이 없었다. 그렇다 보니 영어영문학과를 다니고 있음에도 그 흔한 토익 점수조차도 없었다. 정신분석학과 페미니즘, 그리고 타 전공인 철학 수업을 들으며 인문학적 상상력을 키우는 데만 주력했다. 대학교 졸업을 앞둔 무렵, 나는 극도로 슬럼프에 빠져 있었다. 무엇 하나 명확한 것이 없었다.
모두들 영어영문학과를 다닌다고 하면 학과의 이미지만 생각하고 좋은 전공이라며 부러워했다. 물론 좋은 전공이었고 내가 선택한 길이었지만 당시의 나는 나만의 기술을 가지는 것과 거리가 있는 순수학문에 대해 회의적이었다. 대학입학과 함께 시작한 서울생활은 어느덧 10년째에 접어들었고 불투명한 진로와 함께 북적거리는 서울에서 홀로 소외된 느낌은 나를 더 깊은 수렁으로 몰아갔다. 우울증에 시달리며 집 밖으로 나가기를 꺼려했고 친구들은 그런 나를 우려의 눈빛으로 바라 보았다.
어렵사리 학교를 졸업하자마자 나는 고향 행을 선택했다. 당장 취업이 되지 않는 상태에서 서울에 남아 생활비를 축낼 수는 없는 노릇이었다. 구미로 향하는 고속버스 한 켠에 앉아 멀어져 가는 고속버스터미널을 바라보며 나는 길었던 서울 생활에 이별을 고했다. 10년이라는 세월을 허비했다는 자괴감은 나를 너무도 힘들게 했다.
10년 만에 부모님과 같이 지내면서 병들었던 마음을 치유해갔다. 그러나 근원적인 문제가 해결이 되지 않았다. 바로 취업이었다. 관심이 없었던 대기업 지원서는 줄줄이 낙방하였다. 연일 불합격 통지를 받았지만 내심 다행이라는 생각도 했다. 내가 기쁘지 않은 일을 하며 살아가야 할 앞날에 대한 두려움 또한 컸기 때문이었다. 줄곧 이런 다짐을 하며 마음을 다잡았다. ‘아직 늦지 않았어. 내가 행복할 수 있는 일을 찾자.’ 그렇게 나는 서른 살에 뒤늦은 사춘기를 맞게 되었다.
시간은 덧없이 흐르고 반년이라는 시간을 그렇게 지내면서 나는 짧은 인생을 되돌아보며 나를 행복하게 하는 것이 무엇인가에 대해 곰곰이 생각해보았다. 그리고 마침내 한가지를 찾아냈다. 유일하게 빠져들었던 일은 HTML코딩이었다. 고등학교 때부터 관심을 가졌었던 홈페이지 만들기는 영어영문학과 홈페이지를 스스로 만들어 기부할 정도로 깊은 취미로 변해 있었다. 프로그래밍은 모른 채 단순한 HTML태그만 가지고 인터넷 홈페이지를 만들어내는 일이 뭐가 그렇게도 즐거웠는지 한번 시작하면 배고픈 줄도 모르고 밤새 컴퓨터 앞에 앉아있기 일쑤였다. 그래서 나는 목표를 정할 수 있었다. 프로그래밍을 배워서 내가 좋아하는 HTML코딩과 함께 웹 페이지를 만들 수 있는 개발자가 되자.
긴 시간 고민 끝에 찾은 나의 적성이었지만 졸업도 늦고 비전공인 나에게 웹 개발자라는 직업은 마치 뜬구름과도 같았다. 서른이라는 나이에 10년간의 대학생활을 모두 뒤로 하고 새로운 분야를 선택한다는 것은 모험과도 같았다. 프로그래밍을 접해본 적이 없는 비전공자를 신입으로 써줄 곳은 없었다. 하고 싶은 일은 찾았으나 구체적으로 나아갈 길을 찾지 못한 채로 자바 입문서만 펼쳤다 덮기를 반복하며 애꿎은 시간은 흘러가고 있었다.
기회 그리고 또 다른 인연
마침내 기회는 찾아왔다. 등잔 밑이 어둡다는 말처럼 가까이에 길이 있었다. 가장 절친한 학과 후배가 U-camp JAVA 전문가 과정을 통해 웹 개발자가 되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후배로부터 자바 프로그래밍과 데이터베이스, JSP 등의 기본 지식에서부터 현업에 바로 투입되어도 업무가 가능할 정도로 수준 높은 교육이며, 또한 수료 후 LG CNS 협력사에 입사하게 된다는 이야기를 들었다. 프로그래밍과의 접점이 없어서 힘들어 하고 있던 나에게는 더할 나위 없이 좋은 조건이자 기회였다. 망설임 없이 후배가 다니고 있던 LG CNS 협력사에 이력서를 넣었지만 이미 해당 회사의 U-camp 과정 지원자는 마감이 되었다는 연락을 받았다. 낙담하고 다음 U-camp를 기약하자는 다짐을 하고 있을 때 행운이 찾아왔다. 다른 협력사에서 뜻하지 않은 결원이 발생해 U-camp 과정에 지원할 수 있게 된 것이다. 그리고 나는 특별한 인연을 만나게 되었다. 바로 나의 첫 직장, (주)지엠솔루션이다.
지엠솔루션이라는 회사 이름은 ‘좋은 사람들’이라는 뜻을 가졌다. 이름과 그 뜻에 걸맞게 면접은 현재 프로그래밍을 할 수 있느냐가 아닌 U-camp에서 얼마나 열심히 배울 의지가 있는지에 초점이 맞춰져 진행되었다. IT업계에서는 쓸모 없을 줄로만 생각했었던 취미로 홈페이지를 만들고, 인문학적 상상력을 키우는데 주력했던 내 대학생활에 대해 지엠솔루션의 의견은 전혀 달랐다. 오히려 그런 내 경험들을 높이 평가해주고 그러한 경험들이 수료 후 입사를 하게 되면 많은 도움이 될 것이라는 이야기를 들었다. 이것은 나에게 무한한 자신감을 심어 주었다. 그렇게 한 시간이 넘는 긴 면접을 통과하고 나는 U-camp에 참가하게 되었다.
면접을 본 후 구미로 돌아가는 버스에서 느낀 감회는 새로웠다. 타지생활에 지쳐 처량하게 이 버스를 탄지 꼭 일년째 되던 날 나는 새로운 희망과 나에게 펼쳐질 미래를 생각하며 다시 돌아올 서울에 전혀 다른 인사를 했다. 기회를 주어서 고맙다는 인사였다.
U-camp JAVA 전문가 과정의 입소식에 참가하면서 앞으로 배우게 될 과정에 대해 설렘도 있었지만 두려움 또한 공존했다. HTML 태그 정도만 좋아해서 익혔을 뿐, 새로운 분야에 대한 공부에서 뒤쳐져 혹여 수료하지 못할까에 대한 걱정이었다. 입소식에서 소개받은 U-camp의 강사진은 JAVA를 개발한 썬 마이크로시스템즈 출신의 유능한 강사들로 다른 어떤 강사들보다 믿음이 갔지만 아무리 훌륭한 강의가 있어도 그것을 받아들이지 못한다면 소용이 없는 것이었다.
그런 나의 걱정은 다음날 첫 수업에서부터 또 다시 희망으로 바뀌었다. 비전공자도 이해할 수 있도록 JAVA라는 언어의 기초문법부터 차근차근 강의가 이어졌다. 강사님께서는 한번도 JAVA를 접해본 적이 없었던 나와 몇몇을 대상으로 하루 다섯 문제씩 직접 만들어 반 전체가 아침시간에 같이 풀어보자고 숙제를 내주셨다. 단순히 필기하고 암기하는 것보다 문제를 만드는 것은 더 깊은 이해를 요구했다. 나는 그날부터 수료하는 날까지 평가가 있는 날까지도 매일 거르지 않고 숙제를 했다. 내 인문학적인 배경지식은 프로그래밍 언어의 요소들을 이해하는 데 큰 도움이 되었다. 덕분에 어려운 개념들도 유연하게 받아들일 수 있었다. 그렇게 나는 빠르게 과정에 적응할 수 있었고 이내 JAVA에 푹 빠져 새벽까지 코딩을 하며 시간을 보내게 되었다. JAVA는 어려운 대상이 아니라 게임보다도 더 재미있는 놀이가 되었다.
함께 교육을 받는 동료들 또한 많은 힘이 되었다. U-camp 동기들은 자기 혼자만 이해하고 넘어가는 것이 아니라 좀 더딘 친구가 있다면 기꺼이 도와주고, 또 때로는 도움을 받으면서 멤버십을 쌓아갔다. 수료 이후에도 언제든 서로의 버팀목이 되어줄 많은 동료들을 얻는다는 것은 프로그래밍 능력이 향상되는 것 이상의 기쁨이었다.
회사(지엠솔루션)에서도 지원을 아끼지 않았다. 매주 주어지는 Assignment와 실력향상을 위해 주말에도 줄곧 공부를 했는데 회사에서는 그럴 의무가 없었음에도 기꺼이 주말에도 문을 열어 장소를 제공해주었고 식사까지 제공해주었다. 입사 전에도 지원을 아끼지 않는 회사였기에 나 역시도 내 회사라 여기며 더욱 열심히 과정에 임하게 되었다. 그 결과로 총 3차의 평가 중 2차에서는 전체 1등이라는 좋은 결과도 얻게 되었다.
‘파일럿 프로젝트’는 U-camp의 꽃이자 가장 험난한 과정이다. 웹 어플리케이션의 설계부터 구현, 테스트까지 모두 스스로의 힘으로 해내야 하는 말 그대로의 처녀작이었다. 3주라는 길지 않은 시간에 하나의 웹 어플리케이션을 완성하는 것은 쉽지 않은 인내의 과정이었다. 한참 진행하다 보면 설계부분을 고치게 되어 처음부터 다시 시작하는 일도 부지기수였다. 그러나 넘어져도 다시 일어나는 오뚝이처럼 끈질기게 매달렸고 결국 완성할 수 있게 되었다. 파일럿 프로젝트는 늘 아쉽지만 최선을 다해 후회가 없었던 자랑스러운 첫 작품이었다.
U-camp는 단순히 기술만을 가르치는 것이 곳이 아닌 신입 개발자로서 갖추어야 할 자세 또한 배양할 수 있는 곳이다. 출퇴근 시간을 엄격하게 지키고, 단정하게 비즈니스 캐주얼을 입어 신뢰감 있는 인상을 갖추고 비즈니스 매너 교육도 받는다. U-camp를 먼저 졸업한 선배들이 현업에서 좋은 평가를 받는데, 이것은 실력뿐만 아니라 마음가짐부터 초석을 잘 닦았기 때문이라 생각 한다.
대망의 수료식을 마지막으로 나는 U-camp를 수료하고 지엠솔루션의 정직원으로 입사했다. 매주 주말 시간을 보냈던 회사였기에 전혀 낯설지 않게 적응을 할 수 있었고 회사 인트라넷의 모바일 개편작업을 성공적으로 마무리하며 어엿한 개발자로 빠르게 성장해갔다. 회사의 가족적인 분위기와 U-camp에서 익힌 탄탄한 기본기는 개발자로서의 첫걸음에 좋은 밑바탕이 되었다. 현재 파견을 나온 곳에서 사용하는 툴은 전혀 생소한 툴이었지만 JAVA 기본을 잘 쌓은 덕분에 어렵지 않게 익힐 수 있었다.
무엇보다도 내가 좋아하는 일을 할 수 있다는 것이 가장 행복하다. 좋아하는 일을 하고 있기에 간혹 야근을 하게 되어도 힘들기보다는 오히려 즐겁다. 친구들 중 가장 취업이 늦어 걱정거리였던 나는 1년도 채 안 되는 시간에 부러움의 대상으로 변했다.
나는 이 일을 오래도록 하고 싶다. 빠르게 변화하는 IT업계에 맞추어 U-camp에서 그랬듯 새로운 기술을 익히는데 주저함이 없이 노력하여 다른 개발자들이 함께 일하고 싶어하는 개발자가 되고 싶다. 그래서 나는 목표가 생겼다. 바로 공짜 비행기 티켓이다. 국내에서뿐만 아니라 해외의 회사에서도 나와 함께 일하고 싶다며 공짜 비행기 티켓을 보내오는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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