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점퍼(Jumper) 리뷰(스포일러 주의)
<점퍼> 상상이 현실이 되면 어떤 모습일까? 소설 원작 SF영화
영화 '점퍼'는 동명의 소설을 원작으로 한 SF 영화입니다. 출근길 꽉 막힌 도로 위에서 만원 버스에 시달려본 분들은 순간이동이라는 상상의 힘을 절실하게 바라본 적이 있을 거라고 생각합니다. 눈 깜짝하면 완전히 다른 공간으로 이동하는 '텔레포트' 그것이 현실이 된 영화 '점퍼'를 소개드립니다.
이 리뷰는 영화 '점퍼'에 대한 스포일러를 담고 있습니다. 원치 않으시면 영화를 먼저 보고 와주시기 바랍니다.
'점프(순간이동)'를 흥미롭게 하는 장치들
텔레포트(순간이동)는 누구나 갖고 싶은 힘이지만 그것이 실제로 구현되려면 어떤 모습이어야 할 지에 대해 구체적으로 생각해 보면 꽤 복잡한 문제입니다. 전송 장치가 필요한 것은 아닐까, 순간 이동하던 중 문제가 생기면 어떻게 될까 등등 해결해야 할 것들이 많습니다. 영화 '점퍼'에서는 이 텔레포트를 '점프'라고 부르고 이런 능력을 가진 자들을 '점퍼'라고 부릅니다. 작가의 상상력으로 구체화된 '점프'는 이 영화의 가장 흥미로운 요소 중 하나입니다.
눈으로 직접 보고 생생하게 떠올릴 수 있는 곳으로만 이동할 수 있다
영화 '점퍼'는 점퍼(텔레포터)가 실제로 본 곳으로만 순간이동이 가능하다는 설정을 가지고 있습니다. 즉, 어딘가로 순간이동을 하기 위해서는 그곳을 미리 가보아야 한다는 이야기이죠. 눈 깜짝할 새 다른 곳으로 이동할 수 있는 마법 같은 힘이지만 본래 인간이 가진 한계, 즉 느린 걸음과 기억력의 한계가 이를 제약합니다. 거기에 평범한 사람들의 눈을 피해 다녀야 한다는 제약까지 생각하면 이 힘을 가진 자들도 실제 힘을 사용하는 것은 조심스러울 거란 걸 예상할 수 있습니다.
이 설정으로 인해 점퍼들은 자신이 순간이동하는 장소들을 한번 다녀왔어야 하고 또 기억해야 할 필요성이 생깁니다. 그래서 점퍼는 자신이 이동할 목적지를 사진으로 남깁니다. 영화에서는 이를 '점프 사이트'라고 표현합니다. 세계 곳곳으로 단번에 이동하기 위해 간직하는 사진은 점퍼의 '점프 사이트'를 알려주는 이정표 역할을 하게 됩니다. 점퍼를 추적하고 싶으면 점프 사이트를 알아내면 되는 것이죠.
점퍼와 접촉한 물건 또는 사람과 함께 이동할 수 있다
투명인간이 실제로 가능한 지에 대한 과학적 사실들을 보면 다른 것들은 모두 투명화가 가능할지 몰라도 눈만큼은 불가능할 거라는 예측을 하고 있습니다. 우리가 사물을 인지하는 방식 자체가 우리 눈에 반사된 빛을 이용하는 것이기 때문에 이것마저도 투명하면 아무것도 볼 수 없을 거라는 거죠. 만약 '점퍼'가 이동할 때 몸만 달랑 움직이고 다른 것들은 같이 움직이지 못한다면? 소설 '시간여행자의 아내'에서 시간여행을 하는 '헨리'처럼 순간이동 직후에는 알몸으로 돌아다녀야 할 것입니다.
'점퍼'에서 점퍼는 자신의 몸에 닿은 물건 또는 사람을 함께 이동시킬 수 있습니다. 이 설정 덕분에 점퍼는 이동한 뒤에도 입고 있던 옷을 그대로 유지할 수 있고 손잡고 있는 사람과 함께 이동할 수도 있습니다. 심지어는 타고 있는 자동차마저도 순간이동시키는 것이 가능합니다. '시간여행자의 아내'가 시간여행을 소재로 한 잔잔한 로맨스를 다루는 소설이라면 '점퍼'는 순간이동을 둘러싼 세력 간의 싸움을 그려내는 블록버스터입니다. 점퍼와 함께 물건이 이동하는 설정은 스케일이 큰 블록버스터를 만들어내려면 반드시 필요한 설정이었다고 생각합니다.
'점프'는 흔적을 남긴다
점퍼가 순간이동을 하는 것은 실제로는 마치 마블유니버스의 '플래시'가 빠르게 움직일 때 남는 잔상처럼 흔적을 남깁니다. 흥미로운 것은 이 흔적이 아직 남아있을 때 흔적을 찾을 수 있으면 먼저 이동한 점퍼를 뒤쫓아 갈 수 있다는 점입니다. 눈에 보이는 곳 또는 기억하고 있는 곳은 어디든 이동할 수 있는 점퍼를 추적할 수 있을 뿐 아니라 잡을 수 있는 방법을 제공하고 있는 것입니다.
1000V 이상의 고전력을 이용하면 '점프'를 막을 수 있다
또 한가지 점퍼를 잡을 수 있는 방법은 고압전류를 이용하는 방법입니다. 점퍼는 고압전류가 몸에 흐르게 되면 점프를 할 수 없습니다. 순간이동 외에 특별한 능력이 없는 점퍼들이 전류에 의해 제압당한다면? 점퍼는 그때부터는 평범한 인간에 불과하게 되는 것입니다. '점퍼'에서는 이 설정을 이용해서 점퍼를 제압하는 몇 가지 예를 보여 줍니다.
신의 힘을 가진 '점퍼'를 견제하는 세력이 있다
그리고 가장 중요한 설정, '팔라딘'이 등장합니다. 팔라딘은 신만이 가졌어야 할 능력을 가진 '점퍼'를 찾아내 죽이는 것을 목표로 합니다. 순간이동이라는 어마어마한 힘을 가진 점퍼이지만 팔라딘에게 잡히면 남는 것은 죽음뿐입니다. 팔라딘은 오래전부터 점퍼들을 추적해 왔기 때문에 점퍼를 잘 이해하고 있습니다. 고압의 전류가 흐르면 점프를 할 수 없다는 것을 알고 있습니다. 점퍼의 행위임을 의심할만한 사건이 발생하면 가능성이 있는 인물들을 조사해서 점퍼를 특정하고 점프 사이트를 알아냅니다. 점프 사이트를 이용해서 점퍼를 추적하는 것입니다. 그리고 고압의 전류를 흘리는 무기를 들고 다니면서 점퍼를 사냥합니다.
흥미로운 재료와 나름 흥미로운 스토리
인생역전의 서막
주인공 '데이빗'은 주위 친구들로부터 괴롭힘을 당하는 유약한 고등학생입니다. 데이비드는 어릴 적부터 함께 한 단짝 친구 '밀리'를 좋아하고 있습니다. 데이비드는 세계 여행을 꿈꾸는 밀리에게 에펠탑이 들어 있는 구슬을 선물합니다. 선물을 마음에 들어하는 밀리를 보며 데이비드가 행복해하고 있을 때, 데이비드를 괴롭히는 친구 '마크'가 이 구슬을 빼앗아 멀리 던져버립니다. 구슬은 얼어붙은 강 위에 떨어지고 데이비드는 주위 친구들의 만류에도 구슬을 되찾기 위해 얼음 위로 나서게 됩니다. 구슬을 손에 들고 돌아오려던 찰나 얼음이 깨지면서 데이비드는 물속으로 빠지게 되고 급류가 흐르는 얼어붙은 강 아래에서 꼼짝없이 죽음을 기다리는 신세가 됩니다.
나름 흥미로운 스토리
그때 마법처럼 데이비드가 도서관으로 순간이동을 하게 되면서 목숨을 건집니다. 친구의 괴롭힘 때문에 하마터면 죽을 뻔한 순간에 자신이 순간이동을 할 수 있는 점퍼라는 것을 알게 된 주인공 '데이비드'는 짝사랑하던 단짝 친구 '밀리'와 5살 때 엄마가 가출한 후 함께 지내오던 아빠를 뒤로 하고 가출을 해 홀로 지내기로 결심합니다. 그리고 이제 막 자유자재로 다룰 수 있게 된 점프 능력을 이용해 은행을 텁니다. 문을 열고 들어오지도 않고 은행을 터는 데이비드가 경찰에 잡힐 리 만무했기 때문에 이제 청년이 된 데이비드는 뉴욕에 꽤 비싸 보이는 아파트도 가지고 있습니다.
데이비드는 은행털이로 생긴 돈으로 세계 곳곳을 누비고 다니며 여자를 꼬시며 살고 있습니다. 하지만 저런 능력을 가지고 하는 것이 고작 은행 털기라니. 투명인간이 되어서 한 것이 고작 목욕탕 몰래 들어가기밖에 없다면 이 정도로 한심할까요. 그렇게 허송세월 보내고 있는 데이비드를 끊임없이 추적하는 자가 있었으니 바로 팔라딘 '롤랜드'입니다. NSA, CIA, 국세청 직원 등 사칭하지 않는 것이 없는 롤랜드는 처음 데이비드가 은행을 털었을 때부터 점퍼의 소행임을 직감하고 데이비드를 추적하고 있었습니다.
여느 때와 마찬가지로 데이비드는 이번엔 영국으로 건너가 여자를 꼬시고 원나잇을 한 다음 새벽녘에는 서핑까지 즐기고 돌아옵니다. 그리고 롤랜드와 처음으로 대면하게 됩니다. 롤랜드가 휘두르는 전류가 흐르는 무기 때문에 꼼짝없이 죽을 뻔한 데이비드는 가까스로 롤랜드로부터 벗어나 도망치게 됩니다. 한편 롤랜드는 데이비드의 집에서 입수한 점프 사이트를 기반으로 다시 데이비드를 추적합니다.
롤랜드로부터 도망친 데이빗은 밀리를 찾아갑니다. 그동안 전 세계 여자들을 꼬시며 다니던 것도 이제 다 끝이란 생각이 들어서였을까요. 밀리를 다시 만난 데이비드는 밀리에게 이탈리아 여행을 선물하며 밀리의 마음을 얻습니다. 콜로세움에 몰래 침입해서 밀회를 즐기던 데이비드와 밀리이지만 이미 이들이 이탈리아로 여행을 떠난 걸 알게 된 롤랜드에 의해 콜로세움에서 낯선 팔라딘 둘과 맞닥뜨리게 됩니다. 또 다른 점퍼 '그리핀' 덕분에 데이비드는 이번에도 겨우 목숨을 건질 수 있었습니다. 하지만 콜로세움에 침입한 죄로 체포된 데이비드는 이탈리아 경찰에 체포되고 취조를 받게 됩니다. 그리고 그곳에서 어린 시절 가출한 엄마를 만나게 됩니다.
엄마의 도움으로 경찰서에서 탈출한 데이비드는 경찰에 압수된 여권 탓에 밀리를 홀로 비행기에 태워 보내고 자신은 순간이동으로 디트로이트에 되돌아옵니다. 자신이 없던 사이 롤랜드에 의해 아버지가 살해되었음을 알게 된 데이비드는 이제는 밀리가 위험함을 알고 그리핀에게 도움을 청합니다. 점퍼를 사냥하는 팔라딘과 그런 팔라딘을 사냥하는 점퍼, 그리핀의 도움으로 롤랜드를 해치우고 밀리를 구하고자 했지만 그리핀은 롤랜드를 사냥하기 위해 밀리를 희생시키려는 결정을 합니다. 이로 인해 그리핀과 갈라선 데이비드는 혼자의 힘으로 밀리를 구하기 위해 나섭니다.
하지만 시나리오가 아쉬움은 분명하다
킬링 타임용으로는 더없이 좋은 소재와 나름 흥미진진한 스토리가 인상적인 영화입니다. 하지만 한 발자국 떨어져서 생각해보면 아쉬움이 진하게 남는 부분이 있습니다.
첫 번째는 순간이동이라는 멋진 능력으로 부와 여자를 갖는 것 외에 더 멋진 일이 많지 않았을까 하는 점입니다. 영화 포스터나 공개된 스틸컷 등에서 보면 마치 주인공 데이비드가 마치 슈퍼 히어로처럼 그려지고 있습니다. 멋진 능력을 가지고 있다고 해서 꼭 세계 평화에 이바지해야 한다는 것은 아니지만 순간이동 능력자가 한 것이 고작 은행 털기와 여자 꼬시기, 단짝 친구 꼬시기, 그리고 단짝 친구 구하기라는 것은 분명 아쉬운 부분입니다. 물론 초능력으로 멋지게 활약하는 이들을 보고 싶으면 영화 'X맨'을 보면 되는 부분이긴 합니다.
두 번째는 떡밥 회수 부분입니다. 몇 번이나 데이비드의 목숨을 구해주었던 그리핀을 송전탑에 처박아두고 다시는 찾아가 보지도 않은 건지, 그리핀의 이야기는 결말에선 아예 실종되었습니다. 롤랜드는 겨우 그랜드캐년 어딘가에 데려다 놓아 물리쳤다 하더라도 나머지 팔라딘들은 여전히 점퍼들을 쫓고 있을 텐데, 롤랜드 하나 해치웠다고 완전히 자유로운 몸이 된 것처럼 '밀리와 행복하게 살았답니다' 식의 결말도 문제라고 생각합니다.
세 번째는 2편의 실종입니다. 이런 식으로 떡밥 회수도 하지 않고 그리핀과 싸우면서 온 세상에 순간이동 능력자가 있음을 알려댔으면 2편이라도 나와서 떡밥을 회수했어야 하는 것 아닌가 싶습니다. 하지만 후속편도 없네요. 더 보고 싶은데..
소재만큼이나 화려한 캐스팅
순간이동으로 은행 털고 여자 친구 구한 '데이비드'역의 헤이든 크리스텐슨
멋있으면서도 이상하게 억울하게 생긴 그의 외모가 영문도 모르고 팔라딘에게 쫓기는 점퍼의 운명과 묘하게 일치하는 듯한 느낌입니다. 이후에도 다수의 블록버스터에 출연하면서 멋있음을 뿜 뿜 하고 있습니다.
점퍼 사냥꾼 '롤랜드'역의 사무엘 L 잭슨
말이 필요없는 배우죠. 역시나 악역이 참 잘 어울리는 배우입니다.
점퍼 잡는 팔라딘 잡는 점퍼 '그리핀'역의 제이미 벨
며칠 전 영화 '리트릿'에서 보고 여기서 이렇게 보니까 굉장히 새롭네요.
데이비드를 유일하게 보듬어주었던 '밀리'역의 레이첼 빌슨
The O.C의 히로인 레이첼 빌슨입니다. 드라마 'How I Met Your Mother'를 재미있게 보신 분들은 반가울 얼굴, 레이첼 빌슨입니다. 아역 밀리와 성년 밀리가 잘 매칭이 안 되는 느낌이라 그 부분이 좀 아쉽네요.
아들을 구하기 위해 집나갔던 엄마의 또 다른 딸 '소피'역의 크리스틴 스튜어트
'트와일라잇' 시리즈의 히로인, 크리스틴 스튜어트입니다. 크리스틴 스튜어트가 등장해 깜짝 놀라시는 분들도 많을 것 같습니다. 정말 아주 잠깐 스쳐가지만 너무 잘 아는 얼굴이 단역으로 나올 때 묘한 재미가 있지요.
제 점수는요
4점 주었습니다. 시나리오가 아쉬운 점은 분명합니다만 순간이동이라는 소재를 굉장히 잘 풀어낸 영화임엔 분명합니다. 순간이동 덕에 해외명소들도 두루 볼 수 있어 좋은 점이 있고요. 그리고 여자 친구를 구하기 위해 고군분투하는 데이비드에게 몰입하게 되는 흡인력이 분명히 이 영화에 있습니다. 2편이 나왔으면 참 좋았겠지만 그러지 못해 아쉬움이 남네요. 제 아내가 이 영화 제목을 보고 잠바점퍼를 입으면 순간 이동할 수 있는 영화로 착각한 건 비밀입니다.
왓챠 추천영화 '점퍼'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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