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시네마 천국(Cinema Paradiso) 리뷰(스포일러 주의)
<시네마 천국> 영화 애호가라면 꼭 봐야 할 영화
영화를 사랑하는 사람이라면 이 영화를 꼭 봐야 합니다. '이 영화를 보기 전에는 영화를 논하지 말라'는 이야기를 어디선가 들었습니다. 아직 이 영화를 보기 전이었던 저는 콧방귀를 뀌었죠. 하지만 영화를 보고 난 지금은 어느 정도는 공감이 가는 말입니다. '영화가 영화에 보내는 최고의 찬사'라 했던가요. 영화라는 매체가 갖는 의미에 대해서, 그리고 이 영화가 전달하는 메시지에 대해서 영화를 사랑하는 사람들이라면 모두가 공감할 영화, 시네마 천국입니다.
이 리뷰는 영화 '시네마 천국'에 대한 스포일러를 담고 있습니다. 원치 않으시면 영화를 먼저 보고 오시기 바랍니다.
영화가 만들어낸 천국
진짜로 천국같은 영화관, '시네마 천국'
어린 소년 '토토'는 영화에 푹 빠져 살고 있습니다. 그에게 가장 행복한 시간은 마을의 유일한 극장 '시네마 천국'에서 영화를 보는 것과 영사기사 '알프레도' 옆에서 영화를 상영하는 알프레도를 지켜보는 일입니다. 필름 한컷 한컷에 담긴 장면들이 빠르게 영사되면서 움직이는 화면을 만들어 내는 영화처럼 토토와 알프레도의 추억은 시네마 천국에서 쌓여가고 있습니다.
영화의 배경은 이탈리아의 외딴섬 시칠리아의 잔카르도 마을입니다. 작고 평화로운 이 마을의 주민들에게 시네마 천국은 유일하게 영화를 볼 수 있는 곳이었습니다. 보수적인 신부가 운영하는 극장인지라 흔한 키스신 한번 볼 수 없지만 영화를 보는 동안 울고 웃으며 감정을 공유하는 마을 주민들의 모습은 극장의 이름처럼 마치 천국과 같습니다.
영화가 엄청난 인기를 얻어 극장에 줄을 서도 영화를 볼 수 없는 지경에 이르렀을 때 알프레도는 영화를 반사시켜 마을 광장에 비추어 줍니다. 어쩌면 영화 도둑일 수도 있는 알프레도와 마을 사람들을 꾸중하지 않는 극장주인 신부님도 참 대단한 사람이라는 생각을 하게 한 장면이었습니다.
'토토'와 '알프레도'의 아름다운 우정
토토는 알프레도가 일하는 영사실에 매일같이 들르면서 알프레도에게 필름을 얻으려 하기도 하고 영사기술을 가르쳐달라고 떼를 씁니다. 그 당시 영사기는 화재에 굉장히 취약한 물건이었습니다. 필름이 불에 타기 쉬운 성질이었기 때문입니다. 그런 위험성 때문에 알프레도는 토토에게 영사기술을 가르쳐주지 않으려 합니다. 영화를 너무 좋아하는 토토는 심부름 갈 돈으로 영화를 볼만큼 영화에 푹 빠져 있었습니다. 전쟁터에 나간 아버지의 부재 속에서 토토는 알프레도를 친구처럼 대하면서도 때론 아버지 같은 감정을 느꼈을 것입니다. 자식이 없이 살아가는 알프레도도 토토에게서 때론 아들과 같은 감정을 느낀 모양입니다. 심부름 값으로 영화를 본 토토를 크게 나무라는 토토의 어머니에게 자신의 돈을 건네면서 토토를 보호해준 알프레도에게 토토는 어떤 따스함을 느꼈을까요.
우스꽝스럽게도 검정고시를 보러 온 알프레도가 토토와 같은 교실에서 시험을 보게 되고 알프레도는 토토에게 시험 문제 답을 알려달라고 합니다. 시험 시간 몰래 이뤄진 둘 간의 비행에서 토토는 영사기술을 가르쳐주는 대가로 알프레도에게 답을 알려 줍니다. 이 때부터 토토는 본격적으로 영사기술을 배우게 됩니다.
화마도 거둬갈 수 없었던 둘의 우정과 시네마 천국
알프레도가 영화를 광장에 비추어 주어 마을 사람들 모두가 축제처럼 영화를 즐기고 있던 그 날, 영사기에서 시작된 불은 걷잡을 수 없게 되었고 어떻게든 불을 끄고 남은 필름이라도 살려보려던 알프레도는 영사기에서 치솟은 불에 크게 다치고 맙니다. 큰 불이 났음에도 알프레도를 구하기 위해 뛰어든 토토 덕분에 알프레도는 목숨을 건졌지만 실명을 하게 되었습니다. 영화를 사랑하던 토토와 알프레도, 그리고 이제 다시는 두 눈으로 영화를 볼 수 없는 알프레도라는 설정은 극적이면서도 잔인합니다. 하지만 아이러니하게도 이 사건을 계기로 알프레도에게 토토는 생명의 은인이자 세상을 바라보는 눈이 되었습니다.
다시 지어진 극장에서 이제는 토토가 알프레도를 대신해 영사기사로 일하게 됩니다. 새로운 주인을 맞은 시네마 천국에서 마을 사람들은 편집없이 키스신도 볼 수 있게 되었습니다. 토토는 영사 일을 하면서 가족의 생계를 도울 수 있게 되었고 마을 사람들은 여전히 극장에서 울고 웃으며 축제 같은 날들을 보냅니다.
사랑과 좌절, 그리고 성공
눈으로 보지 않아도 영사기의 상태를 아는 알프레도는 그만큼 토토의 마음도 잘 알았고, 토토의 마음에 한 여자가 자리한 것도 금방 알아 차립니다. 영화를 사랑하던 청년의 마음속에 '엘레나'라는 여자가 가득 들어오게 됩니다.
알프레도는 공주를 사랑한 군인의 이야기를 토토에게 들려줍니다. '나를 얻으려면 100일동안 창밖에서 나를 기다려 달라'는 공주를 얻기 위해 99일 밤을 한결같이 기다리던 군인은 99일이 지나고 마침내 찾아온 100일째에 사라집니다. 훗날 토토는 이해할 수 없었던 군인을 이해하게 됩니다. 비로소 100일이 되고 공주와 마주하게 되더라도 본인은 공주와 사랑할 수 없음이 너무 분명한 현실 앞에서 99일간 공주와의 사랑이라는 혼자만의 상상을 간직하기로 결정한 것이죠.
토토는 엘레나에게 고백하면서 100일동안 엘레나를 기다리겠다고 합니다. 그리고 100일을 기다렸지만 엘레나는 끝내 창문을 열어주지 않았습니다. 하지만 실망하고 돌아간 토토를 엘레나가 찾아가면서 둘의 사랑이 시작됩니다.
토토와 엘레나의 사랑은 마치 '공주와 군인' 이야기와 같습니다. 엘레나는 부잣집 딸이었고 엘레나의 아버지는 가난한 토토가 못마땅했습니다. 다른 점이라면 군인은 100일째에 사라져 버렸지만 토토는 100일을 기다렸다는 점입니다. 그리고 둘은 마침내 서로 사랑하게 되었죠. 하지만 공주와 군인이 끝내 이루어질 수 없었듯, 부자인 엘레나와 가난한 토토는 현실 앞에서 헤어지게 됩니다. 군대에 가기 전날 둘은 만나기로 약속했지만 엘레나는 나타나지 않았지요. 사랑은 시네마 천국에서 시작되어 시네마 천국에서 막을 내려 버렸습니다.
군대에서 돌아온 토토는 엘레나도 없고 희망도 없어보이는 작은 마을에 회의를 느낍니다. 알프레도는 토토에게 '이 마을을 떠나서 다시는 돌아오지 말라'라고 충고하죠. 토토는 알프레도의 충고대로 마을을 떠나 로마로 갔고 유명한 영화감독이 됩니다.
변하지 않는 것
성공한 영화 감독이 된 토토는 어머니로부터 알프레도가 죽었다는 전갈을 받게 됩니다. 이 때문에 토토는 30년 만에 다시 고향으로 돌아오게 됩니다. 어머니는 늙었고, 여동생은 알아보지도 못할 만큼 훌쩍 커버렸습니다. 알프레도는 이제 이 세상에 없습니다. 하지만 오랜만이라 낯설 거라고 느꼈던 고향 잔카르도는 마치 쭉 이 곳에 살아왔던 것처럼 익숙하게 다가왔습니다. 시네마 천국은 이제 철거되고 주차장이 될 처지이지만 마지막으로 돌아본 그곳은 여전히 토토의 추억을 잔뜩 머금고 있었습니다.
알프레도는 죽을 때까지 변치 않고 토토의 성공을 바랐습니다. 자신의 생이 다했음을 느끼면서 토토가 다시 한번 보고 싶을 법 했겠지만 그는 토토를 부르지 않았습니다. 어쩌면 야속하다고 느낄 법도 했지만 이해가 가기도 합니다. 알프레도는 눈이 보이지 않습니다. 대신 눈이 보이지 않게 되자 다른 것들을 볼 수 있게 되었다고 했죠. 토토가 와도 알프레도는 토토의 모습을 볼 수 없습니다. 대신 토토가 보게 될 것은 늙고 약해져 있는 자신의 모습이었을 겁니다. 알프레도가 그렇게 바랐던 성공을 이뤄낸 토토의 소식을 듣는 것만으로도 알프레도는 충분했을 것 같습니다.
알프레도는 토토에게 선물 하나를 남겼습니다. 어린 시절 토토가 그렇게 갖고 싶어했던 편집된 영화 필름들을 이어 붙인 것이었죠. 편집된 장면들의 특이점이라고 하면 전부 키스신이거나 베드신들입니다. 그리고 이런 씬들의 공통적인 주제는 사랑입니다. 알프레도의 선물을 보면서 토토가 느낀 감정은 어떤 것이었을까요. 말로는 표현이 다 되지 않을 그런 벅찬 감정을 연기하는 '마르코 레오나르디'의 연기는 지금껏 본 적 없는 훌륭한 연기였습니다.
아름다운 영상과 아름다운 음악
이 영화가 좋은 이유를 대려면 수도 없겠지만 아름다운 영상미와 OST는 꼭 짚고 넘어가야 하겠습니다. 영화라는 매체를 너무도 잘 활용한 쥬세페 토르나토레 감독의 작업에 찬사를 보내고 싶습니다.
또한 얼마전 고인이 되어 많은 영화인들이 애도했던 음악감독 엔니오 모리코네의 이야기를 빼놓을 수 없습니다. 영화는 몰라도 OST는 다 아는 것이 '시네마 천국' 아니었던가요. 아름다운 음악으로 영화를 빛내준 엔니오 모리코네 감독에게 감사하며 고민의 명복을 빕니다.
제 점수는요
5점 줬습니다. 사실 영화를 보는 내내 어떻게 리뷰를 쓸까 걱정이 되어 영화에 집중이 잘 되지 않았습니다. 토토와 알프레도의 우정, 영화에 대한 감독의 애정, 눈이 보이지 않는 알프레도, 공주와 군인 이야기 등 이 많은 것들을 어떻게 연결해야 할지 감이 잘 오지 않았거든요. 하지만 영화를 끝까지 본 후 이제 평점을 줄 때, 그런 것들이 모두 의미가 없는 일이라는 걸 깨달았습니다. 이런 영화에 5점을 주지 않으면 어떤 영화에 5점을 줄 수 있을지 답이 떠오르지 않았습니다. 좋은 영화는 그냥 영화가 주는 느낌만으로도 충분할 때가 있습니다.
왓챠 추천영화 '시네마 천국'이었습니다.